내 자신과 지구를 덜 헤치면서 살아가기
오늘은 108배가 하기 싫었다. 어젯밤 남편과 라면에 소주 한잔 주고받다가 졸려서 제대로 씻지도 않고 잠이 들었는데 밥하기 귀찮아서 먹은 라면과 며칠 연속으로 마신 술 때문인지 몸이 개운하지가 않다.
남편에게 더 이상 주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 열 시 이전에 잠자리 준비를 하고 일찍 자는 습관을 들이겠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찍 저녁을 먹을 테니 저녁 시간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하루 종일 아이와 시름하고 마지막 수유를 하고 아이를 재우고 나면 아이와의 일과는 마무리된다. 드디어 육아 퇴근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힘든 날은 퇴근 후 시원한 맥주가 간절히 당기듯이 육아도 마찬가지다. 육아가 힘든 날일 수록 육퇴 후 맥주 한잔은 더 꿀맛이다. 모유가 한 달 만에 끊기면서 나는 육퇴 후 맥주 한잔의 시간을 찐하게 즐겼다.
임신하는 동안 참았던 맥주를 먹었던 그날. 나는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분이 너무 좋았는데 맥주 한 캔을 다 마시지 못하고 눈이 감겨서 쓰러졌다. 안 마시는 동안 주량은 줄고 잠은 부족하고. 그래도 그때는 일곱 시 반이면 잠이 들던 아이가 요즘은 열 시, 열한 시가 넘어도 잠을 안 자서 미칠 지경-
아이가 자고 나서도 여전히 할 일들은 남아있다. 하루 종일 나온 천기저귀를 세탁기에 돌리고 빨래 건조대에 널고 나서 거실과 부엌 뒷정리를 하고 나면 금방 자정이 된다. 이사하고 선물 받은 건조기가 있기는 하지만 가능한 전기를 덜 쓰기 위해 요즘은 건조기도 덜 쓰려고 노력 중이다.
귀찮은 날도 있지만 건조한 방안에 빨래를 널고 나서의 하루를 마감하는 뿌듯함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하루 쓰레기를 덜 배출하고 지구를 덜 아프게 했다는 안도감이 제일 나를 위로하는 것 같다. 제로 웨이스트까지는 아니어도 가능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그동안 노력한 게 아이를 키우면서 물거품이 되어가며 실천하지 못하는 괴로움과 죄책감이 마음을 너무나도 힘들게 했다. 몸이 약해지니까 마음과 신념이 약해진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던 시간.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할수록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 오늘도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며.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 영혼을 정성껏 보살피고 돌보는 것이다. 충분히 나를 돌본자만이 내가 살아가는 지구를 덜 헤치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 11일 차 > 나쁜 일은 멀리하고 착한 일을 가까이한 스스로를 감사하며 절합니다.
오늘 하루 내가 착한일을 뭐 했나 곰곰히 생각하다가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 내려 가는 108배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