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배 일기 12일 차 ] 다시 시작.

감정의 노예로 부터 해방되자.

by 초연



하루 이틀 나흘 사흘 그렇게 다섯 날이 지나갔다. 처음에는 손목이 아파서, 그다음에는 꼬리뼈가 아파서 여기저기 아파서 미루고 미뤘는데 진짜 아픈 건 마음이 제일 아팠던 거였다.



남편이랑 한바탕 하고 나면 나는 그동안 서운함과 서러움이 복받치듯 분출한다. 분노와 공격과 비난과 원망이 상대에게 화살 쏘듯이 쏟아낸다. 남편이 내 편 같지 않고 내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라주는 것 같으면 왜 이렇게 서운하고 슬픈지.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도 낯설고 이런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도 서툴다 보니 어린아이처럼 화를 낸다.


우리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일 년 간 연애를 했고 동거를 하면서 부딪히고 갈등이 있었지만 그때는 문제도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나는 4계절을 함께 보내고 함께 살면서 같이 밥 먹고 놀 친구로 부담 없었던 이 남자와 사는 게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 좋았고 감정 기복이 없는 성격이 안정감 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연애와 결혼은 너무나도 달랐다.


연애 때는 사실 둘 사이에 그렇게 함께 고민하고 상의할 일이 별로 없었던 거 같다. 그냥 각자 선택하고 각자 일을 하고 서로 방해되지 않게 노력하면 싸우거나 다툴 일도 없었다. 하지만 결혼과 육아는 많은 일을 함께 고민하고 상의하고 결정해야 된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이 부분이 서툴렀다. 남편도 나도 누군가와 상의하고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런 일들을 많이 해본 적 없이 살아왔던 세월 속에서 크게 어려움이나 갈등이 없었던 것 같다. 서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도 달랐고 대화를 하는 방식도 다르다 보니 갈등이 더 커져가기도 했고 감정싸움으로 인해 본질에서 더 멀어지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감정을 다 써버리고 나면 에너지가 고갈돼서 다음날이 너무 힘들다. 그런 데다가 남편을 향한 서운함과 미움이 더 커지면서 건강하지 못한 에너지를 더 키워가면 내 몸에 화는 독이 되어 내 몸을 더 망가뜨린다.


화를 내면 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는데 특히나 단전 쪽에 에너지가 모이지 않아서 명상을 할 때도 허리를 바로 세우기가 힘들고 숨이 깊게 들어가지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며칠 째 꼬리뼈가 그토록 아팠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던 거 같다.


나의 정력이 다 고갈되어 버리니까 온몸을 지탱하는 코어 힘이 없어서 그렇게 아프지 않았나 싶다. 108배를 하면서도 안 좋은 마음들이 계속 올라와서 며칠 동안 하지 않았다. 내가 이것을 왜 하는가, 억지로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부정적인 감정들이 차곡차곡 내 몸속에서 쌓여가다 보니 나를 지탱하는 가장 중심이 되는 꼬리뼈와 천골, 척추와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왔다.


어제는 한의원에 다녀왔다. 여기저기 부황을 뜨고 침을 놓았다. 선생님은 아기 보느라 많이 힘든가 보다며 위로하셨지만 사실 아이 보는 것보다 나는 내 감정을 조절하는 게 너무 힘들다. 온몸에 피멍이 든 채로 집에 와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오후 내내 뜨끈한 바닥에서 몸을 지지며 낮잠을 잤다. 푹 쉬고 나니까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보다 고마운 마음이 뭉게뭉게 피워 올랐다. 약재와 인삼을 넣어서 삼계탕을 한 시간 넘게 고아서 저녁을 함께 먹으며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이야기하고 잠이 들었다.

인삼 때문인지 약재 때문인지 술기운인지 몸이 달아올랐다. 등줄기에 땀이 또르르 떨어졌다. 남편은 찹쌀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비워냈다. 맛있는 밥상 앞에서 싱글벙글 좋아하는 남편의 그 얼굴과 약간 상기된 목소리가 남편이 표현하는 방법인데 나는 항상 표현하지 않는다고 불만 섞인 목소리로 내 감정을 표현했었다.




결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출산하면서 갑자기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고 가장이 되고 아내가 되면서 변화한 삶에 서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소모되는 게 많다 보니 서로를 품어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남편은 출산 후 날카로워진 나를 당황스러워했고 나는 출산 후 변화하는 몸과 마음 그리고 호르몬으로 인해 내 의지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는 내 자존감을 바라보면 슬픔과 분노의 감정들이 휘몰아쳐서 휘청거리는 나를 보면 또 화가 나서 화를 냈다.



나는 왜 이렇게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내 감정에 자주 지배당하는 걸까.


그런 나를 자책하며 자괴감에 빠져서 허우적 허우적을

몇 달간 하고 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내가 다시 남편을 향해 미소를 짓고 좋은 마음으로 남편에게 말을 걸고 밥을 하고 상냥하고 친절해지면 이상하게 그날은 컨디션이 좋아진다는 거다.



다행히도 오늘 아침에는 어제 아침 아침보다 훨씬 더 괜찮은 컨디션으로 일어나서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에 조용히 집중하며 108배를 했다. 그리고 등 뒤로 떨어지는 햇살을 머금으며 잠시 동안 앉아서 명상을 했다. 방 안에서 쉬고 있던 남편은 명상을 마치자마자 조용히 거실로 나와서 웃으며 “ 커피 만들어 줄까” 하고 묻는다.


“ 응. 좋지”



날씨가 좋아서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키고 청소를 하면서 집 안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팔로 산토 스틱으로 정화를 했다. 11월에 갑자기 한파가 와서 테라스에서 냉해를 입고 다 시들어버렸던 몬스테라와 극락조를 다 잘라내고 따듯한 거실로 옮기고 영양제를 주고 다시 새싹이 올라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아침에 일어 자자마자 거실에 나와서 아침 인사를 하고 관심과 사랑을 줬더니 신기하게 한 달만데 새 잎들이 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넷이나 피다니!!!!! 한파가 다시 찾아오는 이 겨울에 영롱하게 빛나는 연두색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 모습을 보며 남편에게 일찍 안 들여놔서 얼어 죽였다고 성질낸 게 너무 미안해졌다.


시간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지금의 나를 있도록 해 준 세상 모든 인연들에 감사하며 절합니다.


신기하게도 오늘 108배를 하고 나서 꼬리뼈 통증이 사라졌다. 통증이 덜 하니 짜증이 덜 나고 아이에게도 더 많은 에너지를 줄 수 있었다. 덕분에 아이는 꿀 낮잠을 자고 나는 그 시간에 오랜만에 붓을 잡고 그림을 그렸던 주말이다.


그리고 오늘 스스로 칭찬하고싶은것은 주말인데 남편에게세시간이나 자유시간을 줬다는 거다. 하하. 매일 나만 힘들다고 외쳤지 남편이 힘든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척 하고 싶었다. ) 남편은 싱글벙글 장구채 만들 대나무 뿌리를 디깅하러 나갔고 자유시간 후에 생기 있게 돌아왔다. 나는 아이랑 놀고 밥 주고 재우느라 한시간 정도 밖에 집중해서 붓질을 못했지만 생기 가득한 만다라가 피어났다.


이번 한주,

아주 작은 것도 감사한 마음으로 지난 한 주 보다 덜 화내고 더 상냥하기를 스스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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