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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Sep 20. 2016

<비포 선셋>

영화에세이

영화를 좋아하는 너는 매일 한 편씩 영화를 보고 잠들었다. 난 꾸준함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그런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쉰들러리스트 인생은아름다워 굿윌헌팅 트루먼쇼 같은 명작을 좋아한다고 했고, 건축학과였던 너는 건축학개론은 비현실적이라며 싫다고 했던 것도 기억난다. 내 또래 중에 너만큼 영화를 잘 아는 사람도 없었고, 그 당시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완벽했다. 좋아하는 영화장르나 음악을 듣는 기준은 달랐어도, 우린 다른 듯 많이 같았다. 내가 이상주의면 너는 현실 속의 이상주의랄까. 나는 글을 쓰는 예술을 했지만, 예술과 공학을 넘나드는 건축을 하는 네가 멋져보였다. 다시는 너같은 사람은 못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젊을 땐 사랑의 기회가 얼마든지 올 줄 알았다. 하지만 너란 사람은 고유해서, 어떤 사람을 만나도 너만큼 특별하지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너를 좀 더 미화해서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의 기억이 착각임을 깨닫는 것처럼, 살아있는 한 추억은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같은 얘기를 놓고도 두 사람의 기억은 딴판일 수 있고, 너또한 나를 다르게 기억할 수도 있다. 이대로 추억에 그치면 아름답게 기억될 수는 있겠지만 나는 네가 그 때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허무하게 끝난 우리의 사연을 듣고 싶다. 세월은 흘렀고 그 순간은 사라졌다. 이제 우리는 솔직해질 수 있다. 다 끝난 일이지만 나는 자꾸만 억울한 느낌이 들어 '만약에'를 들먹거리게 된다. 네가 말한 영화들을 다 보고나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말이다.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는 네게 여친이 있다거나 내가 결혼을 했다거나, 그저 추억하되 흘러보낼 수 밖에 없는 위치에 놓여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연이 아니었다며, 그 때 만나지 않았던 게 더 나았다며 그 순간만큼은 운명을 대입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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