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제주 시골일상 #1
제주에 살아서 좋은 점은 바다가 가깝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안덕면 서광리라는 제주의 중산간 마을에 살고 있지만 10분에서 15분 정도 차를 운전하면 바다에 갈 수 있다. 20대 시절, 서울에서 회사에 다닐 때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일상 중에 바다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3호선을 타고 출퇴근했기에 한강을 매일 볼 수 있었다. 한강이 조금 위안을 주었지만, 강은 늘 적막하고 쓸쓸했다. 누군가는 바다가 거칠고 사납다 하지만, 유년기를 섬에서 보낸 나에게 바다는 다정하고 수다스러운 품 넓은 친구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를 제주도 돌아오게 만든 이유 중 하나가 바다를 보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중학생이었던 사춘기 시절 사계 바다는 내게 특별한 곳이었다. 자전거를 타면 15분 만에 도착할 수 있던 그곳에는 조그만 정자가 있었고, 워크맨에서 흘러나오는 스티비 원더가 있었고, 어린 나에게는 조그만 일탈이었던 자판기 커피가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던 엄마에 대한 푸념을 털어냈고, 이유 없이 쏟아나던 유년의 짜증들도 날려 보낼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돌아온 이곳에는 자판기 커피 대신 스타벅스가 있고, 조용한 정자 대신 커다란 관광버스와 화려한 입간판들 알록달록 등산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있다. 시간이 많은 것을 바꿔 놨지만 그래도 아직 바다가 주는 정취만큼은 다 훼손하지 못한 것 같아 다행이다.
바다가 좋은 또 다른 이유는 바다에서 나는 먹거리들이 맛있다는 것이다. 낚시가 취미인 아버지는 요즘 숭어 낚시를 다니신다. 제주에서 숭어는 잘 먹지 않는 어종이다. 양식장 주변에서 좋지 않은 먹이를 먹어 살은 많이 오르지만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또 감성돔, 벵에돔, 참돔, 돌돔이 나는 제주에서 누가 퍼석한 숭어를 먹겠는가. 그래도 궂은 날씨에 고기를 잡아오신 아버지의 노고를 생각해 이번에는 솜씨를 좀 발휘해 보기로 했다.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를 보면, 왜 핀란드인들은 이토록 여유로울까?라는 질문이 나온다. 그 질문에 대한 핀란드인의 대답은
"우리에게는 숲이 있거든요."
였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은 한편으로는 두려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안으로 다가온다.
바다 근처에 살아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