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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쌍 Mar 19. 2019

다시/만들다. 음식점

음식점 창업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생이던 시절부터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나는 늘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레고를 조립하듯 재료와 영감을 조립해 빈 땅에 무언가를 짓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설레었다. 건축가가 썼다는 책들을 읽었고 몇몇 교수들에게는 메일도 보내봤다. 수능을 보고 재수를 하고 대학이라는 것은 결국 점수에 맞춰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쯤 학원 친구의 "실기 안 보고도 디자인과를 갈 수 있는 곳이 있데."라는 말에 혹해 그 대학에 입학했다. 디자인 기초 수업을 듣고 그림 그리기와 인문학 책에 몰두했던 대학교 2학년 생은 23살 군대에 끌려갔다. 제초를 하고 보초를 서며 불현듯 순수미술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역 후 1년을 동대문 옥탑방에서 이문동으로 화실을 다니며 한예종을 준비했다. 낙방. 다시 학교로 돌아온 나는 죽어도 그림은 안 그리겠다며 시각 디자인에서 제품 디자인으로 진로를 틀었고 제품에서도 당시 유행하던 UX 기획 와 서비스 디자인을 공부해 졸업도 전에 디자인 회사에 입사했다. 디자이너라는 직함이었지만 3년간 PPT랑만 씨름했다. 뭔가 진이 빠지고 서울이 싫어진 난 제주로 돌아와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민 가기 전까지 운영하시던 두루치기 집을 물려받았다. 2년 10개월의 가게 운영, 크게 손해를 보지도 크게 어려운 상황도 아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아이템도 내가 운영하고 싶은 공간도 아니었기에 가게를 정리했다. 시골로 내려와 작년부터는 귤을 키우고 중간중간 아르바이트 몇 개를 하며 1년의 시간을 보냈다.


무엇을 하고 싶었고 무엇을 했었는지로 정리한 과거를 보니 나는 늘 무언가 '만드는'사람이고 싶었던 것 같다. 인내심과 끈기가 부족했고 꼼꼼함과 차분함이 없어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짧지 않은 생을 관통하는 화두는 분명히 '만든다'였다.


내 안에 있었지만 어딘가에 자리잡지 못했던 무언가 만들고 싶다는 욕구는 아마도 돌고 돌아 지금은 음식에 자리 잡은 것 같다. 쉬는 기간 동안 아내와 밥을 해 먹으며, 가끔 찾아와 주는 손님과 친구들을 대접하며 난 건축을 꿈꿀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디자인일을 할 때도 느끼지 못했던 만족감을 얻었다. 무언가를 잘하고 싶은데 실력이 부족해서, 노력이 부족해서, 정성이 부족해서, 관심이 부족해서 스스로를 자책하고 돌아본 것은 많이 게을렀고 많이 무탈했던 내 인생에서 전에 없던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을 하게 해 준 음식을 평생 하기 위해서 무언가 쫒았지만 결국은 부유하고 있었던 인생의 순간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다시 음식점을 차리려 한다. 아예 맛이나 안 보면 좋았을 지난 음식점 운영의 경험이 많은 기준이 되어 발목을 잡고, 의존적이고 우유부단한 내 성격의 한계와 확신이 서지 않는 내 실력이 자꾸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하지만 나는 다시 음식점을 차리려 한다. 

앞으로 이곳에 쓰일 글들은 나 스스로에 대해 내가 없는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자 늘 무언가 만들고 싶었던 한 사람이 무언가를 정말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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