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제주 시골 일상 #3
제주에서는 아직도 오일에 한 번 장이 열린다. 도시 멋쟁이들 눈에는 제주 전체가 시골이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제주의 서쪽 안덕면에 비하면 으리으리한 도시인 제주시 조차 지금도 오일에 한 번 장이 열린다. 제주도에도 이제 이 마트니 하나로마트니 제스코마트니 크고 작은 마트가 많지만 그래도 제주사람들은 아직까지 오일장에 가서 물건을 산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장 주변이 복작복작 활기가 돈다. 그 많은 할머니들은 어디서 오시는지 버스에서 보행기를 영차영차 끌고 내리시고 평소 길을 다닐 때 그런 스웩을 왜 못 발견했을까 싶게 멋을 부린 할아버지들은 중절모에 지팡이를 짚고 오일장으로 향한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지 않기에 주제넘은 이야기겠지만 제주의 시골에 살아보니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제주는 농사해서 먹고살기에 뒤지게 힘들고 어려운 땅이었을 것이다. 텃밭 조금 일구려 땅에 괭이질을 해보면 사람 머리통만 한 돌멩이는 다반사요 조금 더 파면 사람 몸통만 한 바위가 나온다. 물 빠짐이 심해 논농사는 꿈도 못 꾸는 곳이었고 밭농사도 그렇게 힘들었으니 옛날 분들의 제주의 삶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제주는 지리적으로 동쪽과 서쪽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 다르다. 또한 중산간 마을과 산간마을 그리고 해안마을의 차이도 상당하다. 먹고살기 고달플 만큼 소출은 적었고 그 소출의 종류가 지역마다 다르니 옛 분들이 제주의 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효율적으로 자신의 소출을 나누고 다른 이들과 교환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오일장이 무척 중요했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거기에 집집마다 제사는 또 어찌나 많은지. 제주에서는 제사를 식게라고 부른다. 육지만큼 으리으리하게 상을 차리지는 않지만 제주의 식게에도 꼭 올라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 돼지, 소, 한치, 전복 등으로 만드는 적갈(꼬치)이 그러하고 쌀로 만든 빵이 또 그러하다. 그런 물건을 사려고 어머니들은 부지런이 동내 오일장을 오가셨을 것이다.
어린 시절 엄마에 손을 잡고 오일장에 오셨을 할머니들은 이제 그 엄마의 모습을 하고 좌판에 쭈그려 앉아 쪼글거리는 손으로 물건을 팔고 계신다. 또 모른다 수천 평의 땅을 가지고 계실지도 그분의 자식이 이름만 말해도 알만큼 유명한 분일지도, 그럼에도 할머니들은 매주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신다. 누가 굶어 죽도록 두는 나라도 아니니 삶이 막막하고 힘들어 나오시지는 않으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일장에 들를 때 노인의 삶에 대한 퀴퀴한 연민 같은 것을 갖지 않고 그분들을 바라보려 한다. 오히려 그분들의 야무진 손이나 눈에는 오히려 아직은 젊은 나보다 더한 삶에 대한 질기고 강한 확신과 매일의 규칙적인 일상에 대한 감사가 느껴진다. 그래서 마음이 힘들 때 오일장을 가면 위로받는지도 모르겠다.
음식을 좋아하고 요리를 공부하는 나에게 오일장은 정말 생생한 학습현장이다. 얼마 전 유튜브로 영상을 보다가 고든 램지의 스승인 마르코선생께서 결국 음식은 어머니 자연이 다 해놓은 것이고 요리사는 작은 터치를 통해 음식을 완성하는 거라 말하셨다. 맞는 말이다 철마나 바뀌는 좋은 재료를 잘 고르고 그에 맞는 최소한의 조리로 맛있는 음식을 하려면 오일장에서 배워야 한다. 주기적으로 열리니 계절에 따라 바뀌는 재료를 배우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없다. 또 야채를 담는 동안, 생선을 손질하는 동안, 닭을 토막 내는 동안은 적어도 상인분들이 대답을 잘 해주시니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에도 이만한 곳이 없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출출해질 때, 사실 출출하지 않더라도, 먹는 국밥이나 어묵, 찹쌀도넛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소박한 재료로 이런 맛을 내시는지 감탄도 하게 된다.
오일장이라고 야채와 생선 같은 식재료만 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심기 좋은 모종들도 팔고, 이쁜 꽃부터 어떻게 먹는지는 모른다는 바질이나 세이지 같은 허브류도 있다. 스투시 짝퉁 옷부터 여성 속옷도 있고 장화 구두 꽃신도 있다. 제주시의 큰 장에서는 대장간에서 농기계를 고치거나 칼도 갈 수 있고, 볼 때마다 마음 아프지만 강아지와 고양이 토끼도 팔고 있다. 얼마 전 모슬포 장에서 나는 십 년 전 슈프림 매장을 구경 갔다 반했던 나그참파라는 향을 외국인 상인에게 구입했다. 인도 아저씨는 오춴언이요~! 라며 능숙하고 구수한 한국말을 들려주셨다.
확실히 그렇다. 마트보다 오일장에서는 냄새가 난다. 사람 냄새가. 그리고 그 냄새는 분명 봄꽃의 향처럼 역동적이고 활기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