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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Dec 21. 2017

크리스마스엔 무기장난감 대신 평화교육을!

20171221 정치하는엄마들 기자회견 현장 발언

안녕하십니까 저는 두살 다섯살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조성실이라고 합니다.


작년초부터 저는 큰 아이의 이름으로 난민지원활동을 하는 국제기구에 정기후원을 해 오고 있습니다. 작년 8월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신생아였던 아이의 이름으로도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계기는 아이와 동네를 산책하던 중 만난 활동가분의 설명이었습니다. 난민들이 평균적으로 난민 캠프에 머무르는 시간이 십삼년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제 손을 잡고 선 이 해맑은 네살 꼬마 아이가 열 일곱살이 넘어갈 때까지 비바람을 제대로 피하기 힘든 난민 캠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거죠. 심지어 그 곳에서조차 적정한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에 어른인 저도 놀랐지만, 고작 네 살이었던 큰 아이가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로도 며칠간 질문을 계속했고 그렇게 시작된 후원은 매일 밤의 기도로 이어졌습니다. 어떤 날은 제가, 어떤 날은 아이가 기도합니다.

"전쟁 때문에, 가난해서, 몸이 아파서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주시고, 우리가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다섯살이 된 아이는 남북이 총칼을 겨누고 있는 분단현실에 대해 왜냐고 묻고, 수십발의 총알 사이를 헤쳐 온 무명의 북한 군인에 대해서도 기도합니다

"아저씨 몸이 잘 회복되게 해주시고 북한에 있는 가족들도 지켜주세요." 그리고 제게 묻습니다. "그런데 있잖아. 그 아저씨는 어떻게 생겼어? 키가 작을까 클까? 뚱뚱할까 날씬할까?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아기는 몇명일까?"

어른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무명의 북한 군인은, 아이의 세계 안에서 누군가의 가족으로 아빠로 재구성되고, 아이는 뉴스에서 만난 한 사람의 인격을 입체적으로 그려가면서 사람 대 사람으로 상대를 궁금해합니다.


아이는 때때로 그렇게 엄마인 저를 가르칩니다.

비교하고 경쟁하고 차별하며 서로를 배제하는데 익숙해져버린 어른들에게,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질문합니다. 그게 정말 최선이냐고요. 이해하고 연대하고 공존할 수 있는 더 나은 삶은 없는거냐고 말입니다.


얼마 전 저희 아파트 단지에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붙었습니다.


며칠전 우리 단지 내에서 청소년들이 가면을 쓰고 비비탄 총으로 사람을 향하여 발포한 사례가 발생하셨습니다. 비비탄 총으로 사람의 얼굴을 맞으몀 인사사고의 원인이 되고, 유리창 등에 맞으면 시설물이 파괴될 수 있으니 비비탄 총을 보유한 부모님들께서는 청소년들의 지도를 당부하오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서로에게 비비탄을 겨누고 노는 장면도 심심찮게 보았고, 동네 공터에 떨어진 비비탄 총알을 줍는 다섯살 두살인 제 아이를 제지할 때도 잦았던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자랄 때도 또래 아이들이나 오빠가 비비탄 총을 가지고 노는 모습은 흔하고 자연스러웠으니까요.

엘레베이터에서 그 벽보를 보고 집에 올라와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며 전쟁의 피해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려는데. 이건 아니란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평화는 전쟁터에서만 부르짖어야 할 구호가 아니고,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실천돼야하고, 아이들과 함께 평화를 일궈간다는 건 소소한 폭력과 차별에 저항하고 질문하는데서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기 때문입니다.

비비탄 총을 포함한 무기류 장난감으로 인한 실명 화상 등의 안전사고가 증가하고 특히 13세 미만 아동들의 피해가 많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이를 위한 법제도적 규제와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장난감 총이나 화살 등으로 인해 실명했다거나 실명 위기를 겪었다는 등의 뉴스도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그래도 사회는 변하지 않고, 국영교육방송에서는 끊임없이 아이들의 환심과 주머니를 노리는 캐릭터들이 쏟아지고, 폭력성 상업성 선정성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는 컨텐츠와 상품들이 무차별적으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어린이 선물을 위한 특별 매대에는 탱크 총 칼 등 남자 아이들을 위한 무기류 장난감이 전면에 배치되어 있고요.


그리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일상에서 전쟁은 나쁜 것이고, 난민은 불쌍하고, 가난은 벗어나야 하는 것이라고 배우며 자라납니다. 어른들의 스승이기도 했던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평화엔 낯설고 경쟁과 폭력엔 익숙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이미지 저작권은 정치하는엄마들에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이런 우리 현실에 대해,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그간의 문화에 대해, 한 줄의 질문을 던지고자 나왔습니다. 가장 먼저 제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우리의 현재가 정말 최선인건지. 다시 말해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은 없는건지.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순 없을지에 대해서요.


평화는 때때로 대단한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많은 순간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에. 그 작지만 강력한 실천들에 함께하자고 초대장을 건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아이들에게 무기 모방 장난감을 선물하지 않고 평화와 연대에 대한 상상력을 선물하는 것. 그 일부터 함께 실천해갔으면 좋겠습니다. 지구 저 편의 난민친구를 위해, 북에서 총 맞고 건너 온 무명의 북한 군인을 위해 기도하는 이 아이와 그 친구들이 혐오와 차별을 당연시 하는 어른으로 자라가지 않기를 간절히 열망합니다.


저희 단체 캠페인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강미정 언니의 발언으로 마무리를 대신할까 합니다.


무기장난감을 통해 세상을 나와 적으로 편가르는 사고를 학습시키는게 싫어요. 상대를 적으로 쉽게규정하면서 개별적인 특성을 볼수없게 되는것이 폭력을 낳는거같아요. 권력은 사람들이 편가르고 미워하는걸 원하는거일수도요 사랑할수록 연대하게도니까요. 그래서 무기를 본딴 장난감이 싫어요


독감 걸린 아이를 돌보느라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강미정 언니 이외에도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여러 사정으로 현장에 나오지 못한 엄마들의 마음을 담아 힘차게 외쳐봅니다.


여러분!

무기모방 장난감을 선물하지 마세요.

크리스마스에는 평화를 선물하세요.

감사합니다!

(오늘 현장 손피켓을 다섯살 아들인 정후와 함께 만들었다. 16개월인 준후도 크레파스를 들고 거든다. 정후에게 피켓 문구를 읽어주니 성산동 조정후가 썼고 그림도 그렸다고 꼭 적어달라한다. 그리고는 하는 말.

"엄마 우리 이 카드 여러개 만들어서 아파트랑 대문에도 다 붙이자. 사람들한테 많이 많이 보여주자."


그래. 다음 수업은 그걸로 정했다!....까지 쓰고 연이어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띵동. 연락이 왔다. 이미 오늘 수업샘인 엄마가 아이들과 카드제작.


평화는 가장 가까운 일상의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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