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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Aug 27. 2018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아이들의 행복

사회서비스원의 보육 포함 논란에 관하여

<한어총 국공립분과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국공립 보육정책의 방향’제안에 관한 토론문>


1. 돌봄과 이류시민


인간은 본래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존재이며 국가 공동체의 존속 역시 이러한 상호 돌봄에 근거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암암리에 ‘돌보고’, ‘돌봄 받는’ 모든 주체를 이류 시민으로 취급합니다. 아이와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일과 살림하는 시간은 하찮고 보조적인 것으로 치부되며,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떠안는 일처럼 여겨지지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폄하하면서 누구도 선뜻 하지 않는 일. 그것이 대한민국의 ‘돌봄’입니다.     

돌봄을 천시하는 우리의 가치 체계야말로 청산돼야만 하는 적폐입니다. 초저출산 문제 역시 돌봄에 관한 국가적 재정의 없이는 불가능하고요. 저 역시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누군가를 돌보고 돌봄 받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또 얼마나 고된 일인지 말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등이 아닌 얼굴을 보며 자라야 하고, ‘부모와 호흡을 맞추는 시간 안에서’ 자라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선 불가능하죠. 엄마에게는 단 두 개의 선택지만 주어집니다. 사회적 자아를 포기하거나, 누더기 상태의 일-가정 양립을 유지하는 것.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도 시장에선 작동하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보장된 육아 휴직을 쓰지 못하고 쓰고도 당당할 수 없는 건, 개인의 ‘사적이고 하찮은’ 돌봄 노동을 위해 회사와 다른 구성원들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부모 육아휴직 의무화 및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강도 높은 법제도적 노력과 함께, ‘돌봄’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가치 재평가를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이들에게는 부모를, 부모에게는 시간을, 조부모에게는 자유를 되돌려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어쩔 수 없이 떠맡는 일이 아니라 고되지만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 될 때에야 돌봄과 살림의 성평등한 분담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제 10차 개헌에 “모든 사람은 돌봄을 받을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돌봄권 신설), “국가는 자녀의 출생과 양육을 지원하여야 한다”(임신·출산·양육의 국가지원 의무화), “국가는 모든 사람이 일과 생활을 균형 있게 영위할 수 있도록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일·가정 양립 지원 의무화)가 명시돼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이를 위한 대통령님의 특별한 관심과 의지 표명을 요청 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돌봄의 가치 재평가를 위한 국민 담론 형성에도 주력해주시길 촉구 드립니다. 이를 바탕으로 “모든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돌보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가 옹호되고, 그들이 처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모순이 해결될 때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본 토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2017년 말 한국일보 신년기획(대통령에게 보내는 연하장)으로 게재됐던 글의 일부를 인용한다. 본 토론회 섭외 전화를 받은 이후로 몇 달 전 기고한 위 글이 반복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돌봄 노동을 향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은 오랜 유보통합 논의에서도 가장 큰 장애 요소로 작용해 왔다. 지난 정부 국무조정실 산하에 유보통합추진단이 꾸려져 회계 및 시설 기준, 복지 카드 통합 등에 관한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가장 근본적이고 지난한 과제인 교사 자격 및 부처 통합은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항간에는 유보통합이 남북통일보다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핵심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유아교육과 보육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차별적 시선과 대우다. 동일한 아동에 대한 서비스임에도, 유아교육은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이고, 보육은 아이들을 단순히 돌보는 일이라고 구분 짓는 우리 사회의 편협한 시각이야말로 유보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따져보면 누리과정 지원금 중단 및 집단 휴업 등과 같은 사태 역시 이러한 차별적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사회서비스 공단 공약 이행을 반대하는 보육 관련 학회 및 기관들의 집단 행동 역시 유보통합 과정에서 발생했던 유아교육 학회 측의 돌봄 폄하적 시각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발제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사회서비스원에 보육이 통합될 경우, 현재 민간위탁 과정에서 발생하는 교직원의 고용 불안정 및 열악한 처우와 근무 여건은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공립의 사유화’라고까지 언급되는 민간위탁 운영과정에서의 문제점 역시 개선될 수 있다. 반면 발제자는 ‘사회서비스원에 포함되는 여타 사회서비스직과 보유 대상의 특성이 다르다’는 점을 사회서비스원에 보육이 포함될 시 발생할 주요 부작용으로 제시한다.


2. 보육의 특수성, 어디서 찾을까

급성장기 영유아의 안전을 도모하고 면밀히 관찰하며 시의적절한 도움과 배움을 제공해야 하는 교사들에게 전문성은 필수적이다. 면 대 면 접촉과 상호작용을 주 골자로 하는 보육의 특성상 교사의 인권은 곧 아동 인권의 바탕이 된다.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동별 성장 수준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적절한 순간에 아이에게 필요한 질문을 건네고, 도움을 주는 것’이고 ‘아이가 스스로 만나가는 배움의 기회들을 눈여겨보면서, 아이에게 적합한 수준의 정보를 제공하고 지도하는 것’이야말로 영유아기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 수준이기 때문에서다. 아동별 월령별 격차를 고려하여 한 반의 아동들을 아우르고 돌봐야 하는 보육 교사이기에, 이들의 고용 안정과 적정한 처우 및 노동 환경은 그 자체로 보육의 전문성과 특수성이 된다. 보육의 경우, 노인 요양 및 장애인 활동 지원 등 여타의 사회복지 서비스에 비해 서비스 공급자와 수요자간 애착 형성이 보다 까다롭게 민감한 편이지만, 이 역시 고용 안정을 통해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공급될 경우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는 문제다.

 하여, 반복적인 어린이집 사건·사고와 비리·비위가 발생하는 현 대한민국의 보육 현장에서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선제적으로 요구되는 건 ‘교사 1인당 아동 수 축소’와 ‘적정한 보육 공간 확보’, ‘보육교사의 고용 안정과 적정한 임금 체계 구축’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서비스원을 통해 보육기관의 공공위탁 모델을 마련하고 보육교사 직접 고용 체계가 마련된다면, 보육의 공공성과 투명성 제고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보육 시장 전반에 레버리지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3. 결국, 정책 의지와 실현 가능성의 문제

 물론 발제자가 제안한 바와 같이, 보육진흥원 및 17개 광역시의 육아종합지원센터 위상을 강화하여 국공립 어린이집의 위탁 운영을 담당하게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겠으나, 중요한 건 ‘정책 의지’와 ‘실현 가능성’의 문제일 것이다.

 지난 1년여 넘게 진행돼 온 보육 관련 연합회 및 학회 차원의 집단 대응(사회서비스 공단 및 진흥원의 보육 포함 반대 입장을 중심으로 한)은 보육의 특수성과 공공성을 고려해 현재의 위탁체계를 개편하고 채용 및 처우 개선을 도모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에 바탕했다기보다는, 공단 및 진흥원 차원의 보육 체계 개편을 반대하고자 하는 열의를 바탕으로 진행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만일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사회서비스원 설립 관련 특별위원회의 주장대로 사회서비스진흥원이 아닌 다른 방식의 보육 개편이 가능하려면, 제안한 대안을 따라 어떻게 정책을 관철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한 장단기 플랜과 의지를 제시했어야 한다. 정책 의지도 실현 가능성도 요원한 대안의 제시는 사회서비스원의 보육 포함을 반대하기 위한 면피적 용도로 비췰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유보통합이 요원해질 수 있다’는 부작용 역시, 일각에서는 사회서비스원 편입을 통해 보육 교사 채용 및 근로 환경 개선이 이루어질 경우 미진했던 교사 자격 및 처우 등에 관해 새로운 논의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발제문에 언급된 보육 당사자들의 설문 조사의 경우 표본 추출 과정 및 대표성 차원에서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대다수의 학부모와 보육 교사의 경우 사회서비스원(진흥원 또는 공단)에 관한 균형잡힌 정보를 갖기 어려운 상태에 있기 때문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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