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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Oct 30. 2024

지축이 흔들린다

2024년 10월의 마지막 날, 오늘의 일기

살다보면 문득씩

인생의 지축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만 같은 

'낯선 시절'을 맞이한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순간이 그랬다. 

삼십년 가까웠던 지난 삶이 문언 그대로 '전생'처럼 느껴졌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하루에도 수만번씩 번복해야 하는 날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올해. 

두번째로 맞이한 지축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시절. 

십여년간 하나로 존재했던 우리는 사라졌고,

십오년을 회귀해 학생이 되어버린 나와 

평행 우주 속 엄마인 또 다른 세계가 교차할 때마다 나는 

빠짐없이 어지럼증을 느꼈다. 


게다가 사춘기에 진입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심정이란. 

자기 세계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아들이 내심 자랑스럽다가도 

문득씩 찾아오는 실연 당한 심정. 

내 생애 가장 사랑했던 이로부터 주기적으로 이별 통보를 받는 심정이랄까. 

통상은 몇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해가는 일을 

월말 부부 생활과 함께 한순간에 해내느라 힘에 부쳤던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도 장난꾸러기가 되어 엄마 엄마 엄마 있잖아를 시전해줄 때의 반가움, 

그리고 다시 아쉬움. 


2학기는 조금 더 수월하리라 기대했건만 

9월부터 한달을 넘게 아이들의 고열이 이어졌고, 

결국 마이코플라즈마 폐렴 진단을 받고 아이 둘이 사실상 연달아 입원을 했고 

그리고 나니 난데 없이 낯선 타지에서 내가 꼬박 앓아 누웠고 

그리고 그마저 끝나니 다시 남편이 앓아 눕고. 

그렇게 눈 뜨니 어느덧 중간고사. 


삼주를 넘게 꼬박 앓은 작은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내가 햄버거를 먹고 싶은데 아빠가 안된다는거야. 

그래서 슬펐어. 

근데 생각해보니까 

이 모든게 엄마가 부산에 살아서인 것 같아. 

다른 엄마들처럼 그냥 여기서 회사에 다녀도 되잖아? 

그런데 엄마만 욕심이 많아서 

나까지 두고 공부 하러 가고. 

그래서 나는 너무 슬퍼. 


학교 끝나고 집에 올 때 엄마가 없어서 슬프고 

그래서 놀이터에 나가 보면 온 동네 엄마들이 있어서 슬퍼. 

세상이 엄마들로 가득찼는데 

나만 엄마가 없어서 화가 나. 


엄마는 이제 내 엄마 아니야. 

나는 이제 엄마를 엄마라고 안 부를거야. 

엄마를 사랑하고 보고 싶어하는만큼 

엄마를 미워할거야. 


그리고 이불 속으로 꽁꽁 숨어 들어가 

한참을 흐느꼈다. 

영상 통화 너머 아이의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덮친다. 

나는 지금 어떤 기회비용을 지불하면서 이 자리에 서 있는걸까. 


그렇게 처연한 마음이 그나마의 기쁨마저 잠재웠던 날들.

그러나 정작 잠들지 못했던 밤들. 


좋아하는 공부를 온종일 업으로 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

리부트할 기회가 주어졌다는데서 오는 기쁨들도 

온데 간데 없이 흩어져버린다.

 

아이의 그리움과 슬픔이 

커다란 가시처럼 목구멍에 박혀 

좀체 빠지질 않는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정신적 누수가 생기는 날이면

그런 나 자신을 쉽사리 용납하기 어려워 움츠려들고말지.

 

뒤를 봐. 

너를 기다리는 아이들. 

네가 놓고 온 자리. 

정신 차려. 

지금 그렇게 한가로이 공부할 수 있는 그런 처지가 아니라고, 너는. 


20대보다 세 곱절은 농축적으로 시간을 쓰고 있는데 

그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체력도 기억력도 감퇴하고 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에이징 커브인가. 

생각보다 인정하기 힘든 사실. 


아무리 남편이 많은걸 짊어진대도 

그래도 내가 떠받들고 버텨 서 있어야 하는 기둥이란게 있으니 

그저 서 있기만 해도 때때로 힘에 부치는게 당연지사. 


그렇게 올 가을은 말 그대로 참으로 고됐다. 


그나마 잔나비와 십센치의 노래들이, 

커피 사러 가는 길에 활짝 핀 라일락 꽃향기가, 

캠퍼스를 제집처럼 누비는 토끼 닮은 냥이들이, 

노을 진 구 시가지의 하늘빛이 나를 맞아주지 않았더라면 

정말이지 버틸 수 없었을게다. 

아 맞다, 가끔씩의 밤산책도 있었군.

그리고 새벽마다 일어나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벗. 


시험을 마치고 아이들을 만나러 가기 하루 전,

지나 온 두어달을 뒤돌아보며 나 자신을 도닥여준다.

 

정말 수고했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 이상을 해냈어. 

그 누구도 이만큼 해내지 못했을거야. 


그리고 다시 되뇌인다.

그래,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일들도 

어느새 척척척 해내게 됐었지.

웃으며 그 시절을 추억하고 곱씹었었지. 


지축이 흔들리는 것만 같은 지금 이 시절도 

또 다시 그렇게 뒤돌아보게 되겠지. 


메마른 땅에서도 낭만이 필요한 나를 

상처 받는 와중에도 계속해 사람들을 사랑하는 나를

조금 더 용납해 주자.


그런 나였기에 해 올 수 있었던 일들도 많았다고

그래서 하게 될 있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러니까 멈추지만 말고 걸어 나가면 된다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도 

결핍만이 아닌 성장의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 

할 수 있는만큼 더 마음과 시간을 다해 사랑하자. 

그 이상은 하늘의 몫으로 맡기고. 


아쉽지 않고 부족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으랴.   

그 부족함이야말로 가장 큰 선생인 것을.


그렇게 내 일기에 내가 위로 받고

다시 공부하러 가는 길.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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