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이상한 걸까? (4)

by 조태진

앞선 글에서 저는 "획일주의"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다양성을 지향하는 또는 인정하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그런데 전부는 아닐지라도 일부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획일주의에 끌리는 것일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민주주의, 즉 다양성을 인정해야만 존립이 가능한 민주주의 속에 들어 있는 태생적 모순, 즉 갈등과 대립 같이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뿐 아니라 때론 그로 인해 짜증이나 화가 나게 만들거나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려고 자기 주장을 펼치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주장에 귀 기울어야 하는데 때론 상대방의 주장이 억지로 꿰어 맞춘 듯한 궤변에 가까워서 그를 듣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그 토론이나 논쟁을 아무 쓸데없는 시간낭비로 여겨지게 만드는 모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는 일견 흐뭇한 공상을 할 수 있는데 그런 만장일치가 의견과 주장의 길고 지루할 뿐만 아니러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없애줄 것처럼 보이지만 만약에 그 만장일치라는 흐뭇한 단어 앞에 "강요된"이나 "다수의 협박과 비난에 의한"이라는 꾸밈말이 붙는다면 그 흐뭇했던 마음은 돌연 답답하고 억울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변할 것입니다. 더구나 강요하고 협박하는 주체가 아니라 강요당하고 협박당하는 주체로서의 자신을 상상한다면 말입니다. 이를 요즘 자주 입길에 오르는 갑과 을의 관계로 설명하자면 이런저런 이유, 즉 재력이나 사회적 권력 또는 부모의 뒷배경 같은 이유로 갑의 위치를 점한 사람이 그가 속한 집단에서 리더십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횡포를 부리면서 부하직원들이나 같은 반 친구들을 일일이 통제하려 들면 태생적으로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남들과 다른 관심과 취향과 능력을 갖추고 있고 이런저런 사회경제적인 조건 때문에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다른 사람들은 속으로나마 그에 대해 강하게 반발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행동주의(behaviorism)의 원칙이 적용되는데 그 원칙은 기대되는 보상은 추구하고 반대로 예상되는 불이익은 피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런 카리스마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의 눈에 들어서 마치 예전에 땅 주인의 집사와도 같은 마름처럼 알량한 권력을 얻거나 그의 눈 밖에 나지 않게 처신해서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처신하려면 속된 말로 카리스마적인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권력자의 명백한 또는 암시적인 명령과 지시 그리고 은밀하게 강요된 규칙에 토 달지 말고 "고분고분하게"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권력을 쥔 아이가 그리 고분고분하지 않거나 이른바 소심하고 내성적일 뿐만 아니라 집안 사정이라던가 속상하고 두려운 경험에 한 기억 때문에 우울한 낯빛을 한 같은 반 친구를 마땅치 않아하고 속된 말로 재수 없어해서 부당하게 괴롭힐 때 그 부당한 행동에 같이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데 마치 남에게 고통을 주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디스트처럼 기꺼이 그 언어적 또는 물리적 폭력을 함께 즐기거나 별로 내키지 않아도 알량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나 권력을 정점으로 결속된 또래 집단으로부터 추방당해서 그 결과 상시적인 집단 폭력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겉으로나마 그 폭력에 적극적으로 그리고 그럴듯하게 가담하는 시늉이라도 내야 하는 상황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이해도 납득도 할 수 있긴 하지만 "죄 없는 애를 괴롭혔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괴로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라서; 아니 어떻게 처신해야 옳은 지는 어렵지 않게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소신대로 처신했을 때 분명히 예상되어 눈앞에 그려지기까지 하는 두려운 상황을 도저히 감당해 날 자신이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라도 같은 반의 실세에게 겉으로라도 복종해야 한다는, 자기 생존이 걸린 문제 앞에서 그 아이에게는 한없는 무기력감이 생길 것이고 그에 잇따르는 감정은 자기에 대한 부끄러움을 넘어 자기 혐오감에 빠질 위험이 짙습니다. 문제는 이런 무기력감에 더해서 자기를 미워하게 되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자신을 믿는 마음, 즉 선천적인 그리고 창의성과 연결되는 개인적인 능력과 소질과 관심을 바탕으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과 함께 잘 못하는 것을 경험을 통해 구분하면서 생기고 굳어지는, 한계를 인정하면도 자신의 가능성을 차츰차츰 발견하고 키워간다는 의미에서의 자기 존중감(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능력과 가능성이 심한 방해를 받아서 훼손되고 줄어들 위험이 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자신의 잠재력, 즉 아직은 제대로 키우지 않아서 훈련과 연습이 필요한 가능성으로서의 소질과 능력에는 동기부여가 필수적인데 반의 실세가 시키는 대로, 아니 사실상 강요하는 대로 복종하다 보면 무기력감과 자기혐오에 빠져서 동기부여도 제대로 되지 않고 따라서 자신의 잠재된 소질과 능력을 키울 기회도 원치 않게 스스로 빼앗아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좀 뜬금없고 그 예를 든다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긴 하지만 오래전, 그러니까 한창 산업화 시대였던 70년대 초에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 씨는 그 당시 열악하기 짝이 없던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쓰다가 높디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울분을 참지 못해 스스로의 몸애 불을 붙이고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기 전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 기 막히게 슬프고 억울한 표현은 지금을 사는 아이들에게 적용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은, 슬프면 울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짜증도 내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화도 나는 한낱 인간으로 대접받기는커녕 학습 기계로, 그러니까 모든 즐거움은 기약 없는 미래로 마냥 미룰 것을 사실상 강요당하면서 그저 공부에만 치여 사는데 여기다가 자신의 진짜 생각과 감정과 욕구의 표현마저 봉쇄당하고 게다가 겁에 질려서 자신의 진짜 마음을 스스로 억압까지 한다면 그 아이들이 최소한의, 즉 인간으로서 누려야 마땅한 또는 당연한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를 누리면서 사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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