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이상한 걸까?(5)

by 조태진

아주 오래전 한국의 어느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을 때 중곡동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열렸던 사이코 드라마를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날 사이코 드라마, 즉 미리 각본을 짜지 않고 정신과 의사의 즉흥적인 즉석 연출에 따라서 진행되는 사이코 드라마의 주인공은 그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년의 여성이었는데 극이 진행되면서 그녀가 무슨 이유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지,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할 지경까지 되었는지에 대한 윤곽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서 기억이 흐릿해지긴 했지만 그 상황이 기가 막혀서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그녀가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오랫동안 상시적으로 언어폭력이나 심지어 물리적 폭력을 당했고 그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만성적인 끔찍한 스트레스를 겪다가 결국에는 현실, 즉 피하고 싶고 거부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현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서 그만 현실과의 끈을 놓아버리고 이른바 관계망상에 기반한 정신분열증이라는 섬뜩한 심리적 질환에 걸려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 날 티브이를 보다가 아마도 자신의 기구하고 불행한 처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인물을 연기하는 드라마 속 여배우를 보다가 "내가 저 드라마에 나왔다"라는 관계망상 경험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망상은 오래 누적된, 게다가 제대로 해소되지 못해 고스란히 쌓인 피해들로 인해 생기는 피해의식, 그리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우리말 속담처럼 그렇게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그것도 부당한 피해를 당한 사람이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에 예민해져서 때론 남들이 하는 말이나 표정을 보면서 곡해, 즉 귀로 대충 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속의 단어 몇 개만 가지고서 또는 그냥 웃는 것이거나 다른 일로 짜증이 나서 얼굴을 찌푸렸을 뿐인데도 초보자가 복잡한 암호를 잘못 해독하듯이 남의 말이나 표정을 섣불리 자신과 연결시키면서 오해하는 "일반화의 오류"에 바탕을 둔 피해망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쓴 책 속 내용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들이 경험하는 정신질환 증상들은 모두 약한 형태로 "정상적인" 사람들도 경험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주장에 완벽하게 동의할 수는 없지만 피해망상이나 관계망상 증상들은 일정 부분 일반적인 사람들도 드물지 않게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이를 우리는 흔히 "오해"나 "편견" 또는 "아집"이라고 부릅니다. 이를테면 상대방이 오해를 풀기 위해 관련 상황이나 사정을 설명하는 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그가 빠져나가려고 거짓말을 늘어놓거나 변명을 하고 있다는 주관적인 믿음을 고수하는 등의 태도가 좋은 예일 텐데 이 경우 그 믿음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판가름해 주는 것은 상대방의 설명 중에 듣는 이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있는가 또는 상대방이 그렇게 말하거나 행동할 충분한 객관적인 동기가 있었느냐의 여부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여성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여자가 피해망상적인 편집증 환자인지 여부를 가리는 것은 녹록지 않아서 그녀의 다른 행동과 말들을 연관시켜 조심스럽게 판단해야 하지만 만약 그녀가 대낮에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남편이 거래처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음란한 마사지 샵에 갔을 것이라는 확신에 찬 의심을 한다면 그녀가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것으로 보아도 그다지 지나치지 않을 텐데 왜냐하면 남편이 직장에서 거래처에 갈 수는 있지만 직장 상사에게 무슨 일로 거래처의 누구를 만나는지 승낙을 받거나 다녀와서 결과 보고를 해야 될 텐데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마사지 샵에 갈 가능성이 적고 게다가 마사지 샵에 안심하고 가려면 차라리 퇴근 후에 들려도 되는데 왜 굳이 대낮에 가려고 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어린 학생들의 경우 반이나 학교에서 언어폭력이나 심지어 물리적인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맥없이 장기간 노출될 때 합당한, 즉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피해의식"을 가질 수 있는데 주변의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감지하고 인식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장기간 부당한 폭력을 오래 당해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이는 자기 보호 본능, 즉 육체적인 생존과 더불어 가볍게 볼 수 없는 정신적 심리적 생존을 지키려는 자기 보호 본능에 의해서 마치 주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적을 경계하며 살피느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척후병의 상태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을 것입니다. 그 병사가 후방에 있을 때는 좀처럼 감지할 수 없는 작은 소리나 기척 예민해지듯이 그 학생도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주변 친구들의 숙덕거림이나 맥락을 알 수 없는 주변 친구들의 웃음 등에 예민해져서 "마치" 자기를 향해 험담하고 비웃고 조롱하는 듯한, 때로는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하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이런 피해자 학생의 반응을 섣불리 정신장애로 판단하는 것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옛 속담처럼 경솔할 뿐 아니라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한데 그 이유를 농담을 조금 섞어 말하자면 그런 사람을 색안경을 끼고 볼 위험도 있지만 거꾸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오히려 일종의 관계망상, 즉 이러이러하면 반드시 저러저러해진다는 침소봉대 식의 과장되고 편협한 관계성에 사로잡혔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구분을 쉽게 하곤 합니다. 그리고 상담심리센터 등에서는 심리장애를 확인하기 위해 질문 문항 수가 엄청 많아서 쉽사리 깊이 꼼꼼하게 생각해 보고 답변하기 힘든 설문지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설명을 돕기 위해서 잠깐 삼천포로 빠지자면 제가 독일에서 심리학을 공부할 때 심리검사 관련 과목을 수강했는데 심리검사에 대한 이론을 가르친 교수님께서 강의 마지막 시간에 그동안 강의를 듣던 이십여 명의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여러분, 이제까지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지혜>를 측정하기 위해 어떤 설문 문항이 가능할까요?" 그러자 그 질문을 받은 학생들은 저를 포함해서 모두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해졌는데 어느 여학생이 자신 없는 작은 소리로 "느긋하다"라는 질문으로 지혜를 측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대답을 듣자 저는 지혜와 느긋함 사이에 뭔가 관련성이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받긴 했지만 이렇게 표현해도 좋다면 죽은 시체를 해부해서 각 신체 기관에 대해 공부하는 해부학 시간의 의대생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동시에 같이 받았습니다. 더 이상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기능하는 관계를 갖지 못하는, 명력을 잃은 기관들로 남아 있는 고깃덩어리 같은 시체의 어느 한 기관만을 떼어서 관찰하는 듯한 그리 유쾌하지 못한 느낌으로 말이지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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