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존경하는 어느 지식인은 오랫동안 프랑스 땅에 살면서 한국인이라는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프랑스와 프랑스 사람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는데 그 책 속에는 사업차 한국 땅을 밟은 중년의 프랑스 여성 사업가에 대한 일화가 나옵니다. 그 일화를 짧게 옮기자면 그 프랑스 중년 여성은 한국의 평범한 동네에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이유를 어느 한국인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 질문을 받은 한국인이 그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고 그 말을 들은 그 프랑스 여성의 입에서는 곧바로 "당신들, 한국사람들은 다 미쳤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고 합니다. 그 프랑스 여성이 들은 말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텐데 학원에서 사용하는 공포 마케팅, 즉 지금부터 영어나 수학 등의 과목을 미리미리 배워서 준비하지 않으면 아주 나중에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고 엄마들을 겁 줘서 그 결과 자녀의 미래 때문에 몹시 불안해진 엄마들이 졸리면 자고 싶고 힘들면 쉬고 싶고 놀고 싶기도 한 그저 한낱 인간으로서의 자녀의 존재에 애써 눈을 감고 "극성스러운 엄마"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헬리콥터 맘(helicopter mom)이 되어 곁에서 아이를 감시하며 여러 개의 학원에도 보내고 집에서는 아이들이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그럴 시간에 공부 좀 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바람에 아이는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오로지 먼 마래의 일인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위해 관심은커녕 지루하고 어려워서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공부를 사실상 거의 강제로 해야 해서 그로 인해 당연히 동네 골목에서 찬구들과 어울려 놀 시간도 조건도 허락되지 않는 사실에 경악에 가깝게 놀라면서 "어떻게 엄마들이 자기 자녀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것을 강요하고 채근하는 모진 짓을 할 수 있을까?" 하며 당혹스럽고 화도 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위의 일화를 소개한 이유는 한 사회나 공동체, 그러니까 동일한 사회문화적인 조건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눈에는 자기도 잘 모르게 몸과 마음에 배어버려서 익숙해진 관행이 그렇지 않은 외부자의 눈으로 볼 땐 낯설고 때론 경악스럽고 말도 되지 않아서 어처구니없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저는 엄마들이 "자녀가 인간적인 욕구와 감정을 지닌 한낱 인간이라는 사실에 애써 눈을 감는다"라고 표현했는데 저는 이 사실을 어느 날 티브이에서 방영하는 교양 다큐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다큐의 주제는 속된 말로 인기 유튜버가 되어서 "대박 터뜨리기"였는데 조회수가 엄청나게 많아서 그로 인한 수입이 억 소리 나는, 자기의 어린 자녀의 생활을 동영상으로 제작해서 유튜브에 올려 인기 유튜버가 된 외국의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느 젊은 엄마가 집안 거실 한 구석에 조잡한 무대를 꾸려놓고서 이제 고작 대여섯 살 밖에 안 돼 보이는 어린 딸에게 티브이 피디처럼 이렇게 해 봐라, 저렇게 해 봐라 하면서 동영상을 찍고 있었는데 아이가 몹시 하기 싫어하는 표정으로 엄마에게 "나, 그만 할래"하면서 인상을 찡그리자 그 엄마는 조금만 더 하자며 아이를 달래 가면서 동영상을 계속 찍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잠시 후 그 엄마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면서 입에서는 "내가 이 짓을 계속해야 하나?"라는 말이 새어 나왔습니다. 그 장면을 본 저는 "이제 저 잔인한 짓을 그만두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서 그 젊은 엄마는 대박을 터뜨려서 돈방석에 앉고 싶은 욕심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몹시 귀찮아하고 힘들어하는 어린 딸의 동영상을 계속 찍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애써 눈을 감는다"는 표현을 종종 쓰곤 하는데 이 표현을 따져보면 "사실은 그 무엇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에둘러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의 혹사 수준으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들도 사실은 자기도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모질게 대한다는 것, 즉 인간이 인간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은" 잘 알고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외부 환경의 조건이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인 그 엄마들은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더라도 "그럼 어떡해, 내 아이가 공부를 못해서 이다음에 변변치 못한 대학에 들어가서 비정규직은 아닐지라도 불안하고 월급도 많지 않은 직장을 구하고 그로 인해 아이 인생이 꼬이고 남들로부터 인정도 못 받게 되면 어떡해"라는 마음이 자신의 모진 행동을 합리화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그 엄마의 말은 얼핏 보아 옳아 보입니다.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어 있다"는 표현처럼 학원의 공포 마케팅이나 주변의 다른 엄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마음을 초조하고 두렵게 만드는 소문 등으로 몹시 불안해진 그 엄마는 적자 않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해 그 문제에 신경이 쓰이고 정신적 시선도 그리로 쏠리느라 시야가 좁아져서 깜박 시야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건 효율성 측면, 그러니까 자기 아이가 그렇게 오랫동안 그 힘들고 벅찬 학원 공부를 잘 따라가면서 그로 인해 예전보다 훨씬 나은 성적을 올릴 가능성이 높을까, 아니 그런 가능성이 존재나 하는 걸까?라는 문제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그로 인해 아이들이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은 곪을 대로 곪아서 행복감은커녕 만성적인 노이로제나 "마음의 감기"라고 부르면서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그리 가볍지 않아서 사람의 신체뿐 아니라 정신과 마음도 천천히 갉아먹으면서 삶을 피폐하고 시들게 만드는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곪아서 마음속에 깊이 남은 상처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어서 어느새 어른이 된 아이들에겐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온통 혼란스럽고 공포스럽게 짙은 회색으로만 보여서 때로는 어쩔 줄 몰라하고 겉으로는 주변 사람들, 이를테면 친구나 작장 동료들과 별문제 없이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친구나 동료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 누가 언제 느닷없이 내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들을 경쟁자나 심지어 적으로 여겨서 속으로는 긴장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서 요샛말로 그저 친한 척, 좋아하는 척하는 "코스프레"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아직 능숙하지 못해서 눈에 띄게 과장되고 어색할 뿐만 아니라 전에 어디선가 본 다른 배우의 연기를 흉내 내는 티가 물씬 나는 연기를 하는 초년생 배우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정신 나간 사람 말고는 자기 자녀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을까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