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수치를 확인하지 않아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로 고통받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예전에는 낯설었던 이 정신의학적 장애의 명칭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부터 종종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기 시작해서 점점 더 자주 듣게 된 것으로 보아 아이들이 겪는 "현대의 심리질환"이라고 불러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국 정신의학협회(APA)가 펴낸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DSM)에 따르면 이 질환은 거칠게 분류해서 세 유형으로 나뉘는데 1) 주의력 결핍장애 2) 과잉행동장애 3) 두 증상이 같이 나타나는 유형으로 구분됩니다. 그런데 DSM에 따르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는 각 유형에 따른 비율이 다를지라도 일반적으로 볼 때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에게서 나타나는 비율이 두 배로 높고 과잉행동장애 및 충동장애가 주요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정신의학계에선 이 심리 질환이 유전적인 소인에 의한 것으로 간주해서 집중력을 높여 준다고 알려진 도파민 같은 향정신성 약물을 처방해 주기도 하는데 제가 의대를 나오지 않아서 의학적인 전문 지식으로 그 견해에 반박할 수는 없지만 이 심리질환에 대한 DSM의 설명 중에 "남자아이가 과잉행동 장애나 충동장애에 걸리는 비율이 여자 아이보다 높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조금 뜬금없어 보이는 얘기지만 아주 먼 옛날 옛적에 여성이 공동체를 지배했던 모계사회가 막을 내리고 부계사회로 전환된 뒤 장자, 즉 첫아들에게 아버지의 재산과 권력을 물려주는 행위가 관습화 되었고 그로부터 남아 선호 사상이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꽤나 약화되었지만 이 제도화되어 굳어진 관습으로 인해 남자아이, 특히 장남에게는 부모의 상당히 커다란 기대에 기반한 무거운 짐이 지워지는 반면 여자아이에게서는 그저 탈 없이 잘 자라서 좋은 남자 만나 아들 딸 낳고 잘 사는 정도밖에 기대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나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눈에 띄던 70년대 산업화 시대가 자나고 "아무도 내 삶을 대신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뻔한 말이 정신 번쩍 들게 사회 전반에 퍼지도록 만든 IMF 사태가 일어나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점점 더 현격하게 줄어들고 그와 반비례해서 불안정하고 보수도 썩 좋지 않은 이른바 "비정규직" 일자리가 양산되면서 한국사회 내의 "의자 뺏기 놀이"식 경쟁은 전과 비교해 훨씬 치열해졌고 그 결과 사교육 시장의 공포 마케팅이 촉발한, "미리미리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나중에 삶이 고달파진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교육은 돈 주고 사고파는 상품이 되어 버려서 그 결과 "부모의 재력이 좋을수록 좋은 대학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이 한국 사회의 신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살벌해진 사회 분위기로 인해서 물질적, 심리적 부담이 급작스럽게 증가하자 70년대의 출산 표어가 강조하지 않아도 출산율이 급격히 줄어들어서 자녀를 한 명만 가지거나 아예 한 명도 낳지 않는 추세가 나타났고 그 현상은 점점 심화되면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여러 자녀들을 기를 때 비교적 골고루 쓰이던 신경이 외동딸이나 외동아들에게 전부 쏠리게 되었고 그뿐만 아니라 예전보다 훨씬 각박해지고 살벌해진 사회의 경쟁적 분위기, 다시 말해서 마치 의자 뺏기 놀이처럼 내가 잘 살려면 경쟁하는 타인들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도 안 되고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든 그들을 이겨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피 말리는 경쟁이 지속되고 동시에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엄마들의 선천적인 모성애는 왜곡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어서 어린 자녀들에게 "이다음에 잘 살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었고 불길하고 섬뜩한 느낌을 주는 "행운의 편지'처럼 주변에서 접하는,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알 길 없는 괴소문(?)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몹시 불안해진 엄마들 중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미리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의 미분 적분 선행교육도 모자라서 심지어 아직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들어갈 나이도 안 된 아주 어린 자녀에게 영어 같은 선행교육을 시키는, 어처구니없어서 말문이 막히고 어안이 벙벙해지게 만드는 현상도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뜬금없어 보이지만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주로 또는 거의 주인공에게 시선이 쏠리곤 합니다. 그렇듯이 엄마들이 선행교육이니 사교육이니 하는 말들을 들으면 자기 처지와 비교하면서 주로 다른 엄마들에게 시선을 주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대세에 어긋나거나 부족한 것은 아닐까?" 또는 "내가 나도 모르게 잘못하거나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라는 불안을 줄이기 위한 이유 때문ㅋ이기도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뜨끔뜨끔하면서 "내가 내 아이한테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라는 윤리적인 물음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혼란스럽고 불안해진 마음을 "내 또래 다른 엄마들도 대부분 다 그러는데"하면서 달래려고 할 수 있는데 그건 자기가 자기 자녀를 가혹하게 몰아치면서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는 것을 사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속의 꺼림칙함을 억지로 가라앉히려는 시도일 것입니다. 그것을 좀 극단적인 예로 비유하자면 자신의 열악한 환경과 그로 인해 생기는 괴로운 마음을 일시적으로라도 달래고자 마약에 손을 대는, 안과 밖의 구별을 영원히 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저 일시적이어서 재삼재사 마약을 복용해야 하는 마약 중독자의 처지와 비슷할 것입니다.
하지만 시선을 아이들에게 돌리면, 다시 말해서 방과 후 매일 같이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면서 편의점 컵라면으로 급히 저녁식사를 때운 뒤 밤늦게까지 쉴 틈도 없이 학원을 다니고 학원이 끝나면 다음날 새벽 한두 시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지겨운 숙제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아이들의 마음속 얘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면 어떤 얘기가 들릴까요? 그러기 위해선 우선 시간 이동을 하듯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그때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이라는 상상력이 필요할 텐데 상상력의 한계 때문에 요즘 아이들의 처지를 똑같이 느낄 수는 없어도 대략적인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상황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감정, 즉 불쾌하고 싫고 속상하고 화가 난다 같은 정서적 느낌을 말이지요. 그런데 다른 느낌들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그중에서도 "화가 난다"는 정서적 느낌이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화 또는 분노는 그 화나 분노를 일으킨 대상에게 향하기 마련인데 아이가 느끼는 화는 그 자체로 괴롭고 힘든 감정이지만 "내가 지금 내 엄마한테 화가 나고 있구나"라는, 불편한 정서로 인해 생겨난 인식은 아이들을 적지 않게 당황하게 만들고 심하면 자기 엄마에게 화가 났다는 사실이 어이에게 죄책감마저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화는 일부러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성질이 아니라 당연히 자연발생적인 성질의 것이고 조금 따져보면 특정한 대상의 "어떤" 측면 때문에 발생합니다. 물론 그렇게 생긴 화 때문에 그 대상 자체를 싫어하거나 혐오할 수 있지만 "애증(愛憎)의 관계"라는 표현이 가리키듯이 어떤 경우에는 특정 대상에 대해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는, 얼핏 보아 모순된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따져보면 아이는 엄마의 반강제에 따라서 지겹고 힘들고 어려운 학원 수업을 늦은 밤까지 매일 들어야 해서 피곤하고 졸리고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이 커질 것이고 그런 자연스러운 욕구가 좌절되는 이유가 다름 아닌 엄마의 강제 때문이라고 어렴풋하게라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생긴 엄마에 대한 화는 "엄마가 나 잘 되라고 시킨 거지, 엄마 잘 되자고 시킨 건가?"라는 질문 앞에서 속으로라도 인정하면서 배출될 내적 통로를 막히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생긴 분노는 어쩔 수 없이 우회적으로라도 배출될 통로를 찾기 마련이고 그래서 때론 그 화를 풀어버릴 만만하고 안전한 화풀이 대상을 찾게 될 수도 있는데 이를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빌리면 "투사(projection)'"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