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초등학교 동창생인 어느 유명 작가는 자신의 책 속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불교의 화두를 쓴 적이 있는데 그가 그 표현을 쓴 이유가 "인간은 궁극적으로 혼자인 존재이고 아무도 대신 자신의 삶을 살아주지 않는다"는 아주 당연한 말을 하고 싶었을 거라고 충분히 짐작했지만 남들과 공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어서는 살 수 없는 한계를 지닌 사람의 조건 때문에 오롯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수동적이거나 예속적인 삶의 형태를 옹호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 때문에 상대방이 때로는 어쩔 줄 몰라하며 도움의 손길을 바랄 때 섣불리, 그것도 주제넘게 자신의 판단과 결정을 사실상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라는 말에 걸맞도록 "내 생각엔 이런데" 하는 정도의 도움말을 주는 데서 그쳐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인간적 한계와 함께 가능성을 가진 한낱 인간이듯이 상대방도 그렇게 인간적인 한계와 가능성을 똑같이 가진 인간적 존재로 정직하게 인정하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이를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에 적용해 보면 우선 부모, 특히 엄마는 선천적인 모성애 때문에 자기 자녀에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고 엄마의 속성상 자기 자녀를 보호하고자 하는 성향을 나타낼 텐데 이때 중요한 감정은 "혹시 내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입니다 그런 불안 속에서 어린 자기 자녀를 자신과 똑같은 "인간"으로 본다는 것은 무슨 뜻을 내포하고 있을까요?
외부 조건에 대한 심리적 반응으로서 불안은 자발적인 반응이기 때문에 당연히 제 맘대로 바꾸거나 없앨 수 없어서 어느 엄마들은 짐짓 불안하지 않다는 듯 자기를 속이려 들어도 불안은 여전히 마음속에서 떨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외부의 조건 때문에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마음속 불안을 우선 정직하게 인정하고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자녀와의 관계로 옮겨보면 아직 경험이 적어서 당연히 서툰 어린 자녀가 혼자서 무언가를 해 보려고 할 때 그를 본 엄마의 마음에는 "저러다 다치면 어떡하지?" 또는 "저러다 내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때문에 때로는 마음이 몹시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이때 무 자르듯이 이분법적으로 "그래서 아이의 일에 일일이 간섭하거나 모두 내가 대신해 준다"와 "아이를 자율적으로 키우기 위해서 아이에게 전적으로 그 일을 맡긴다"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뜬금없는 말이지만 우리는 가끔 어떤 사람이 하는 어떤 행동을 보면서 어떻게 되나 "지켜본다"는 표현을 종종 씁니다. 이 말은 마음에 들지 않고 탐탁지도 않은 사람이 하는 행동이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못된 마음"을 표현할 때도 쓰이지만 이 표현 중에 "옆에서 지켜본다"는 표현이 자녀, 특히 어린 자녀를 가진 부모의 태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건 마음속 불안을 감추지 못하면서 어린 자녀를 보는 부모, 특히 엄마에게 해당되어야 하는 표현일 텐데 옆에서 어린 자녀의 행동을 바라보는 엄마는 자녀의 행동이 위험해 보이거나 영 마뜩잖을 때 자녀에게 "이건 이렇게 해야 하고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일일이 자녀를 간섭하거나 심지어 엄마가 대신 그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면서 아이에게서 자율적인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자녀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불안" 때문에 말이지요.
다행히도 인간에게는 처한 상황 때문에 생긴 욕구를 그 상황을 따져가면서 그 욕구의 표현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면 그 판단을 바탕으로 욕구의 표현을 자제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는데 옆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자녀를 보는 엄마들도 일일이 간섭하고 싶거나 대신 알아서 해 주고 싶은 마음을 자녀의 성장을 바라는 또 다른 마음으로 자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점은 어린 자녀에게 공간적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엄마가 "네 옆에 있다"는 든든하고 안심되는 느낌을 줄 필요가 있을 텐데 이것은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듯한 느낌이 아니라 "내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엄마한테 말해. 그럼 엄마가 좀 도와줘 볼 테니까" 하는 듯한 안전한 느낌을 주는 태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모성애에 기반한 엄마의 자녀에 대한 보호 본능뿐 아니라 아이의 성장을 바라는 엄마의 바람 두 가지 모두를 표현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앞서도 밝혔지만 요즘 어린아이들이 시달리는 "현대의 심리질환"인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의 원인이 정신의학계의 주장대로 유전적 소인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린 자녀들을 둔 엄마들이 그 장애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를 티브이 교양 프로그램이나 입소문 등으로 전해 듣고서 "혹시 내 아이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아닐까 하며 불안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착시 현상처럼 환경적인 조건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마치 ADHD 증상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이상 행동"이 사실은 아이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적 조건과 함께 부모, 특히 엄마가 자녀를 대하는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제 짐작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와 더불어서 제가 자주 강조하곤 하는 말이지만 뚜렷한 개인적 보편적인 한계를 가진 한낱 인간인 우리들은 외부의 환경적 조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 그에 대한 심리적 반응을 나타내기 마련인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나 경우들을 견뎌 가면서 소중히 카워야 할 "인간적 의지", 다시 말해서 한계를 가자고 있는 그런 "의지"를 바탕으로 일상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런저런 불안들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 불안들을 견뎌 가면서 내 아이, 그리고 나 자신 또한 조금은 더 건강하게 살고 조금씩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들을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물론 여전히 불안하지만 가끔은 일상 속에서 그리 거창할 것 없는 행복도 보람도 느끼는" 그런 삶 말이지요. 그런 행복이나 보람은 어느 날 어린 자녀와 함께 장을 보러 마트에 갔는데 어린 자녀가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가리키면서 "엄머 것도 같이 살까?"라고 말할 때나 제가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어느 날 장을 보러 마트에 갔을 때 어떤 어린 여자 아이가 어떤 식품을 두 개 사려고 하는 자기 아빠에게 "아빠, 그건 비싸니까 한 개만 사"라고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코 끝이 살짝 찡해지는 행복이나 보람 같은 성질의 것일지도 모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