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이상한 걸까? (13)

by 조태진

어느 날 하루의 일을 끝내고 이미 어둠이 깔린 늦은 시간에 마트로 장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계란 같이 비교적 금방 떨어지는 식품류와 함께 눈길을 붙잡는 상품 중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쇼핑 카트에 담다 보니 어느새 음료수 코너까지 와 있었습니다. 평소에도 어린아이들을 눈여겨보곤 하는데 그날 제 눈길을 끈 장면은 이제 고작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닐만한 나이의 어린 여자 아이가 엄마가 가자고 채근하며 잡아끄는 손을 자기 쪽으로 끌면서 "엄마, 나 이거 마시고 싶어"하면서 다른 손의 손가락으로는 어느 음료수 병을 가리켰습니다. 시선을 조금 돌려서 그 어린 여자아이가 가리키는 음료수를 보니 생수 같이 투명한 음료수였는데 그 음료수를 보자 대번에 맛이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발길을 멈추고 티 나지 않게 그 모녀를 보고 있던 저는 그 아이의 엄마 입에서 나온 얘기를 듣고서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는데 그 이유는 그 아이 엄마가 어린 딸에게 "그건 맛이 없어, 엄마가 맛있는 음료수를 사 즐게"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엄마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서 작아진 소리로 "그래도 난 저게 마시고 싶어"라고 말하는 어린 딸을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사실 그 엄마가 밖으로 꺼낸 말도 제 신경을 건드렸지만 속에서 저도 모르게 "젠장!"이란 말이 저절로 나오게 한 건 어린 딸에 대한 그 엄마의 강압적인 말투와 태도였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제 눈에도 그 아이가 가리킨 음료수가 맛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에게도 그 음료수가 진짜로 맛이 없게 보인 것은 거의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 광경을 보고서 짜증이 난 이유는 그저

엄마의 취향인 것을 도대체 왜 아이에게 강요하는지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도 마치 자기의 개인적인 취향을 보편적인 것처럼 표현하면서까지 어린 딸에게 강요하는 것은 설사 엄마가 고르는 음료수의 영양 성분이 더 좋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가 마시고 싶어 하는 게 위험한 불량식품도 아닌데 그렇게 강제하는 행위는 어린 딸을 자기와는 다른 개성과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서 인정하지 않는, 사실상 횡포나 독재적인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습니다.


흔히 우리는 아주 어린아이들을 가리켜 "천사 같다"고도 말하지만 아이가 심하게."떼를 쓰면" 골치 아픈 존재로 여기기도 합니다. 저는 아이들, 특히 어린아이들은 발달단계의 특성상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기애의 전 단계로서의 건강한 자기 본위적 이기주의에 의해 주로 행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건강한 자기본위적 이기주의란 악성의 이기주의와는 질적인 차이를 보이는데 그 이유는 타인을 해치거나 짓밟으면서까지 자기의 이해관계를 관찰하려고는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성질의 이기주의는 앞으로 자기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즉 자기를 지키는 것과 함께 타인의 이기주의를 이해하고 공감하기도 하는 삼리적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기본위적인 이기주의가 건강한 자기애로 이어지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엄마와의 건강한 상호작용과 관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란 아이가 자기본위적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자기주장을 할 때 그에 대해 엄마가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매우 중요데 그건 엄마가 아이의 자기주장을 무시하거나 억압하는가 아니면 그 주장을 아이의 고유한 취향이나 관심으로 수용하는가 여부입니다. 이 말은 아이의 자기주장을 다 받아준다는 뜻이 아니러 그 주장을 아이의 것으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만약 아이의 자기주장이 아이에게 해로워 보이거나 처한 상황 속에서 적절치 않다고 판단될 때에는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아이를 납득시킬 필요가 있는데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그 말을 하는 부모도 아이를 납득시키고자 하는 자기의 말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아이가 비싼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 하는데 부모의 눈에 비쌀 뿐만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그런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나빠"라고 말하는 대신 "그 장난감은 너무 비싸서 사 줄 수 없어"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여전히 비싼 그 장난감이 탐이 나더라도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취향과 관심에 바탕을 둔 자기주장이 부모로부터 수용되었다는 "느낌' 때문에 욕심은 나도 마음은 배배 꼬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모들 중에 정신 나간 부모가 아니라면 어느 부모도 아이가 잘 크는 것을, 다시 말해서 스스로의 삶을 자율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율적"이란 표현이 가리키는 참뜻은 무엇일까요? 그건 타인이 강제하거나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에 순종하고 굴종하며 수동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과 결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자율적인 판단과 그에 바탕을 둔 행동에는 당연히 자기 책임이 동반됩니다. 이 말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낱 인간인 그 아이는 그 당시 자신의 한계와 더불어 인간이란 존재의 보편적인 한계 때문에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고 그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자기의 실수와 시행착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렇개 실수와 시행착오를 스스로 인정할 때 그로 인해 해결에 실패한 문제를 자신의 손으로 다시 해결해 보고 싶은 내적 동기가 생길 것이고 그래서 재도전할 가능성이 존재하게 되는데 그 방법은 과거의 실수와 시행착오를 되새겨 가면서 다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우리는 "학습"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테고 연거푸 실수와 시행착오를 거듭해 가면서 계속 자신 앞에 닥치는 문제를 자신 안에 차곡차곡 쌓인 과거의 경험들과 그를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노하우"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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