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사람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자녀 (3)

by 조태진

심리학 이론 중에 공격성의 원인이 욕구불만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이 이론은 얼핏 사춘기의 청소년들에게 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공격성을 "화풀이"라는 표현으로 바꿔보면 사춘기 청소년뿐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엄한 대상에게 화풀이를 하는 유치한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행위를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합리화"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기가 보아도 유치하고 어처구니없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온갖 화려하고 고상한 표현으로 자신의 유치한 행동을 애써 가리려 해도 제삼자가 보기엔 그저 말도 안 되는 변명 말이지요. 이 이론을 엄마와 자녀의 관계에 대입해 보면 현대의 한국 엄마들은 심할 뿐만 아니라 만성적인 욕구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건 설사 잘 나가던 커리어 우먼이었더라도 결혼 그리고 출산으로 인해 퇴직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고 경력단절이라고 건조하게 표현되는 시기에 고된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하느라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키우기는커녕 아이들이 커서 좀 시간이 나더라도 취업의 기회는 전처럼 크지 않아서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 등의 정도만 가능성이 남아 있게 됩니다. 게다가 쉴 새 없는 사회경제 그리고 문화적인 비교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를테면 모는 자동차 모델이 무엇인지, 어느 동네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지, 남편은 어느 회사에서 무슨 직책을 가지고 얼마나 돈을 버는지, 그리고 아주 중요한 요소로서 아이 사교육은 어디서 얼마나 시키는지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비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려서 속으로 "더 많이, 더 높이"를 외치면서 늘 욕구불만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만성적 욕구불만 상태에서 육아를 한다고 상상해 보면 육아라는 행위가 책임감을 동반한 즐거운 일이기보다는 그렇지 않아도 욕구불만 상태인데 자녀까지 엄마 뜻대로 따라주지 않게 되면 더 심한 욕구불만 상태로 빠져서 그 상태가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바깥으로 표현되고 이 느낌을 알아차린 아이에게도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개 말씀드리면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에게는 "그럼 나 보고 어떡하라고"하는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교과서 같은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욕구불만과 심한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육아 방식, 즉 언제나 자녀 옆에 붙어서 자녀를 보호하고 돌봐야 한다는 사회적으로 공유된 일종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아주 어린 자녀를 혼자 두기에는 마음이 불안할 수 있을 텐데 그 경우 자녀와의 물리적 거리를 멀지 않게 유지하더라도 심리적 거리는 어느 정도 떨어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에게도 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는, 옆에 바짝 붙어 미주알고주알 간섭하고 참견하고 지시하는 육아가 아니라 비록 옆에 가까이 있더라도 아이가 혼자 활동하는 것을 용인하면서 엄마도 처한 조건이 허락되는 한 자신의 관심과 취향에 맞는 자신만의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엄마를 부르면서 도움을 요청할 때 아이에게 주의를 기울여서 아이와 의사소통을 하며 도움을 주고는 다시 자신의 활동으로 돌아온다면 아마도 육아가 지금보다는 힘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엄마들, 특히 젊은 엄마들은 자녀가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아서 속상하고 짜증이나 화도 난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이때 우선 엄마의 뜻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발달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삶에는 주기별로 고유한 과제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어쩌면 세상의 다양한 측면들을 알아가면서 서로 연결시키고 분리하기도 하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아직 추상적인 개념으로 세상을 파악할 수 없는 아주 어린아이는 우선 원시적인 감각을 사용해서 세상, 특히 자기 주변의 세상을 알아가면서 같다, 다르다 및 싫다 좋다는 선천적인 범주에 구체적인 대상이나 현상을 차곡차곡 채워나갈 것입니다. 이는 거칠게 비교하자면 수학처럼 같은 종류의 대상을 다른 종류의 대상과 구별해서 수를 세는 것부터 시작해서 구구단을 외우고 그를 바탕으로 등식이나 부등식을 풀고 나아가 함수 문제도 푸는 일련의 계층적 발달 과정과도 많이 닮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초적 단계를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면서 허겁지겁 상위 단계로 진입하려 들면 설령 그 상위 문제를 풀더라도 기계적인 학습만이 가능하고 이해라는 차원에서 보면 영 꽝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학습은 단기 기억, 그러니까 암기만을 한 뒤 아주 짧게 기억 속에 머물다가 사라지거나 설사 달달 외운 파편적 기억이 기억 속에 남아 있더라도 그 파편적 기억과 유기적으로 관련된 세부 지식들은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거나 이해를 동반하지 않은 채 암기했기 때문에 당연히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서 뜻을 잘 모르는 모르스 부호 같은 또 다른 파편적 기억으로만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다음에 우리 애가 불행해지면 어떡해?" 하며 불안해하는 엄마들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시키지 않으면 우리 애가 나중에 불행해질 테니 지금부터 공부를 시켜야 돼" 하면서 아이의 공부에만 온통 관심을 기울입니다. 물론 공부를 시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세상을 탐구해 가는 어린아이들에게 도구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문제는 공부를 시키는가와 공부만 시키는가의 구별이고 그 공부 양이 아이가 감당할만한 수준인가 와 더불어 아이가 그때그때 자신의 상태에 맞춰서 공부할 수 있는 재량권을 어느 정도 용인하고 허락할 것인가입니다. 그런데 심한 불안은 시야를 몹시 좁게 만들어서 그 문제와 관련된 다른 조건들에 눈을 감게 만들거나 소홀하게 할 수 있어서 한낱 인간으로서 자녀의 한계나 학습의 효율성이나 능률 그리고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조건인 지루함이나 권태로움 때문에 쉬고 싶고 놀고 싶은 욕구의 존재에 애써 눈을 감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 예를 들면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정규 노동시간을 초과해 매일같이 밤 10시 넘어 퇴근하고 게다가 자주 주말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직장인의 삶을 상상해 보면 설사 그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여도 그의 정신과 마음은 녹초가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표현처럼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심한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좀 쉬고 싶고 자고 싶고 놀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가 자기 마음에 저절로 생길 것이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알 만큼 뻔한 일입니다. 런데 한 가지 질문을 하자면 이런 뻔한 사실에 엄마들이 눈을 감을 수 있게 만드는 건 대체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심한 불안 탓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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