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사람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자녀 (2)
불론 처한 한국의 현실 때문에 녹록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점은 어린 자녀를 둔 엄마로서의 여성이 자기 자신의 삶도 살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물론 부모, 자녀, 학생, 직장인 등과 같은 사회적 문화적 역할 수행을 소홀히 할 수는 없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사회적 문화적 역할을 담당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개인입니다. 이 말씀으로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사회문화적 역할에 대한 교과서 같은 매뉴얼이 존재할 수는 있어도 개인적 삶에 대한 시시콜콜한 매뉴얼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취향과 관심 그리고 적성과 능력 같은 개인적 성향을 외부의 규칙으로 가르치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와 비슷한 관삼과 취향을 가진 사람의 삶의 방식이나 능력과 소질을 닦는 활동을 참조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인공지능식의 가계적이고 융통성 없는 따라 하기가 아니어서 단지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힌트 같은 답변은 될지언정 "왜?"라는 질문, 즉 "내가 이 행동을 왜 하고 싶어 하지?" 또는 "이렇게 하고자 하는 이유나 목적이 무엇이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오로지 자신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행동에 대한 동기나 이유를 외부에서 찾는다는 말은 현실 논리로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따라 하기가 위험하고 말이 안 되는 이유는 마치 연극 대본을 달달 외워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연기하는 배우처럼 완벽하게 그 역할을 소화해낼 수는 있지만 연극이 최종적으로 막을 내리고 나면 그 대본과 발성의 톤 그리고 몸짓 등이 기억 속에 한동안 남아 있다가 흐려질 뿐만 아니라 정신이 어떻게 된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과 극 중 인물을 헷갈릴 수 없어서 극이 끝나면 다시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오듯이 육아에 대한 매뉴얼에 담긴 책이나 강연 속 내용을 아무리 잘 숙지했더라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특히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적합하고 자신의 진짜 모습과 어울리는지를 이해하거나 동감하지 못한 채 "좋은 엄마라면 ~게 해야 한다"는 명령조의 설명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해 보고 질문을 던지고 취사선택하지 않으면서 그 상징적 권위에 사실상 복종한다면 좀 지나치게 말해서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외관도 진짜 엄마와 그리 다르지 않은 인공 로봇에게 육아를 맡기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한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우선적이고 근본적으로 아이가 필요로 하는 엄마의 인간적인 느낌, 이를테면 엄마의 정서나 욕구를 바탕으로 한 엄마의 반응이나 행동을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 요즘 육아 지침서나 강연에서는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것 같은데 저는 이 가르침에 중대한 허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엄마와의 정직한 정서적 소통과 교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는 보호와 돌봄이 전해주는 안락함, 편안함 그리고 안전함 등의 느낌을 제대로 받을 수 없기 때문인데 이렇게 될 때 유감스럽게도 엄마의 존재는 수업 내용을 전달만 하는학교 선생님의 역할과 비슷해져서 부담스럽고 때론 벗어나고 싶은 성질의 것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점은 엄마 스스로 엄마란 명령과 지시만을 내리는 상관 같은 존재가 아닐 뿐더러 게다가 엄마란 아이에게 쩔쩔매는 시녀나 하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자녀와.동등한 인간이라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보다 나은 육아를 위해서 육아에 대한 지침서나 강연을 보고 듣는 것을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마치 교과서를 읽고 그 내용을 직접 실생활에 적용해 보려고 할 때 때론 난관에 부딪히거나 어떻게 적용해야 될지 모르거나 심지어 구체적인 실생활과 모순적인 관계를 가질 수도 있는 것처럼 비슷한 어려움에 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생활에서 마주치게 되는 상황을 교과서 같은 지침서나 강연이 완전히 포괄할 수 없을뿐더러 때로는 지침서나 강연에서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상적인" 답안괘 같은 처방을 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침서나 강연 등에서 한낱 인간으로서의 엄마의 솔직한 감정이나 욕구를 제대로 인정하거나 심지어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한낱 인간으로서 엄마도 실수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고 게다가 때론 잘못도 저지르면서 육아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에 애써 눈을 감게 하는 위험도 있습니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경험을 통해 학습을 하는 존재인 인간으로서의 자녀가 엄마의 실수나 시행착오 그리고 잘못을 경험하면서 그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내적 반응인 정서나 욕구를 경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와 다른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엄마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나처럼 똑같이 감정에 치우치기도 하고 좀 욕심도 내고 그로 인해 실수나 시행착오를 겪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머리만에 아니라 가슴으로도 경험할 수 있고 그래서 오히려 엄마라는 존재를 편하게 받아들이고 게다가 엄마가 간혹 저지르는 실수나 시행착오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지거나 속이 상하더라도 경악의 수준으로 놀라지 않으면서 그저 속으로 군시렁거리는 정도에서 엄마의 반응을 수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육아 지침서나 강연 등의 내용처럼 자신의 속내, 즉 이랬으면 또는 저랬으면 하는 바렘에 바탕을 둔 감정, 즉 짜증이나 화나 속상함 등을 최대한 밖으로 표시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더라도 엄마가 자녀에게 말하는 억양은 명령조나 위협으로 들릴 위험이 농후합니다. 게다가 아이가 엄마의 지시에 좀처럼 따르지 않고 자기 의견을 주장하거나 엄마의 지시를 반대한다면 그런 아이의 반응에 화가 잔뜩 차 올라서 그만 애써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자기도 잘 모르게 폭발할 위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반복되는 이런 반응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는 점차로 엄마의 반응 패턴을 "학습"하게 되어서 그 후 어떤 유사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예상되는 엄마의 반응을 짐작하게 되고 그로 인한 자신의 정서와 욕구도 느끼게 될 텐데 이는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욕구불만과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성질의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엄마도 유사한 상황에서 아이가 어떻게 반응할지 경험의 축적을 통해 예상하게 되어서 그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미리부터 짜증과 같은 스트레스성 감정을 느끼게 될 텐데 육아에 대한 자신의 머릿속 패턴을 계속 고집하는 한 이는 더욱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억누르려고 하는 심각한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건 억지로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억제하지만 비언어적인 표현, 이를테면 엄마의 엄하고 화난 듯한 억양이나 어투 그리고 좀처럼 감출 수 없는 엄마의 짜증 나거나 화난 표정을 두 눈과 두 귀로 보고 듣고서 엄마의 속마음을 눈치챈 아이가 그러면 내가 더 반항해야 내 주장을 관철할 수 있다고 여겨서 전보다 더 심하게 고집을 피우먼서 떼를 쓰거나 짜증이나 화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엄마의 어투나 표정을 보고서 엄마의 돌봄이나 보호를 박탈당할까 봐 지레 겁에 질린 아이가 엄마의 주장을 겉으로 고분고분 따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단 그런 엄마의 모습을 자주 경험했기 때문에 속으로는 엄마에 대한 분노나 적개심을 느끼면서도 엄마의 돌봄과 보호를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서 고분고분 말을 들으려고는 하지만 자기 자신의 주장과 취향이 거절당했기 때문에 심한 무기력감과 낮은 자존감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대중매체나 책 속에서 "착한 아이"에 대한 추상적인 교훈적 내용을 접한 아이라면 그 교훈적인 내용을 자신과 비교하면서 엄마에게 느끼는 분노나 적개심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스스로를 두려워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어떤 측면의 자기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만들어서 겉에서 보면 무척이나 내향적인 아이로 보일 수 있지만 아이의 속은 점점 병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때 구원의 동아줄 같은 것이 있다면 엄마더라도 다른 타인으로서 자기 자녀에게 때론 화도 나고 짜증도 나는 한낱 인간임을 자기 자녀에게 적절히 표현함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항상 네 편이야, 왜냐하면 너는 내 소중한 아이거든"하는 비언어적인 마음 속 느낌을 종종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제야 아이도 때론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성가시고 짜증도 나고 화도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를 여전히 좋아해, 왜냐하면 나를 낳아 준 내 엄마잖아" 하면서 때론 실수도 하고 때론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는 인간으로서 엄마 그리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편하게 수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