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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땃쥐쓰 Mar 29. 2020

1-4

출국


출국일은 설날 연휴 다음날로 정했다. 휴가객이 일정을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타이밍을 노려봤지만 공항은 여전히 언제나처럼 북적였다. 하마터면 유심칩 수령을 못하게 되고 나서야 다시 한번 무엇이든 공항 수령은 하지 않는 것으로 다짐을 하고 비행길에 올랐다.


인천공항은 영하 삼 도로 경량 패딩에 바람막이까지 걸쳤어도 오들오들 떨며 출국장을 헤매었는데 경유지인 쿠알라룸프르 공항에만 내려도 무의식은 타지를 실감했다. 몸을 감싸는 공기의 습도와 향취, 이국적인 언어들의 세상에 발을 내딯자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태세를 취하고 내가 어리숙한 일을 하지 않도록 정신을 무장시켰다. 다 회간의 여행 경험 때문인지 원래 성격이 그러한지는 모르겠으나 위기일 때 주변을 한번 더 둘러보는 태도는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장기 여행에 가장 필요한 품목에 빛나는 PP카드와 다이너스 카드로 라운지에서 요기를 하고 마침내 인도로 향하는 게이드에 들어서자 나는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시간여행을 하는 듯 몽롱해졌다. 순식간에 5년 전의 감정, 기억들이 덮쳐왔다. 인도로 가는 문에는 여행객들보다 집에 돌아가고자 하는 인도인이 대다수였고 그들 사이를 비집고 작게 난 틈을 걷자니 그들의 말, 체취, 태도, 눈길 순식간에 모든 것들이 기억났다가 사라졌다. 여행을 다녀온 직후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까지.


나는 잊었다고 생각했던 낯섬에 대한 기억이 일상 속에 파묻혀있다가 나타난 것뿐이었다. 나는 두렵고 동시에 설렜다. 다시 익숙한 것들을 벗고 나체가 된 채로 낯섬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할 내일부터가 두려웠고 그 상처와 탈피의 기억은 영원히 내 마음에 남아 이렇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설레었다. 어젯밤까지도 직시하지 못했던 거친 현실감에 가슴이 뛰었다. 마음을 다잡으며 자려고 애쓰면서 나의 여행이 시작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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