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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땃쥐쓰 Mar 29. 2020

[2장] 인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



코친 공항 근처는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가고자 했던 아름다운 항구도시가 아니었다. 두 시간가량 떨어진 시내에서 우리는 뙤약볕 아래를 말없이 걸었다. 둘 다 하루 사이에 열흘 치 햇빛을 내리꽂는 것 같은 열기에 적응하려 애쓰며 뭐라도 먹을 수 있을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암사자처럼 두리번댔다. 어디에도 알파카 씨의 위생기준치에 도달하는 것처럼 보이는 레스토랑은 없었다. 마침내 눈이 허락하는 골목의 끝까지 걷고서 우리는 개 중 제대로 창과 문이 닫혀있고(에어컨을 돌리고 있다는 뜻이다!) 덜 낡아 보이는 한 집에 들어갔다.


나는 메뉴판을 받자 잊고 있었던 메뉴의 이름과 맛이 모두 떠오르는 지식의 기쁨에 열심히 지뢰밭에 지뢰를 골라냈고 알파카 씨는 큰 결심을 한 듯 나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고 자력으로 (대충 찍어서) 메뉴를 골랐다. 운명적인 인도의 첫 끼니. 콩 카레와 도사 세트는 음.. 맛있지는 않았지만 지뢰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더위 때문에 죽겠기 때문에 대충 욱여넣고는 일어났다. 아직도 알파카 씨는 인도의 첫 끼니 이야기를 한다ㅋㅋ. 숙소는 이름뿐이었지만 호텔이었고 화장실이 깨끗했기 때문에 우리는 패닉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이미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릭샤(오토바이 택시) 소리와 꿀을 발견한 개미떼처럼 몰려오는 호객꾼들, 차선 없는 도로의 상황에서 이미 너무 많은 정보를 흡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만의 조용한 정리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는 이미 이 년 반을 함께 한 사이. 침묵이 편안한 베프의 상태가 되어 서로에게만은 익숙한 마지막 장소가 되어주자는 무언의 다짐으로 마치 한국에서와 같은 대화를 조용히 나누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이름뿐인 호텔을 떠나며 유들유들한 매니저와 여행객을 조금 등치는 일은 그다지 나쁜 일이 아니라는 신조의 흔한 인도 사장님에게 안녕을 고하고 포트 코치로 향하는 버스를 수소문했다. 공항 주차장 한 켠에 서있던 버스를 물어물어 달려달려 타고 보니(절대로 혼자 찾을 수 없음. 물어보세요. 꼭. ) 이게 웬일인가 에어컨도 슁슁 나오고 좌석도 제대로 붙은 현대식 버스였다. 아무렴~인도도 5년 간 많이 발전했겠지. 마음속에서 문명에 대한 고마움이 차올랐다. 옆의 알파카 씨도 내심 이 정도면 인도도 다닐 만 하지-라고 생각하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어쩐지 뿌듯해져서 창 밖을 구경하며 차분하게 굴었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 그런 최신식의 버스는 다시는 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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