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5일 광주 집회 참여 후기
2025년 2월 13일. 트위터에서 극우 세력들이 대거 광주로 집결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광주? 내가 아는 그 광주? 5.18 민주화운동이 있었던 그 광주에 극우 세력이 모일 거라고? 한동안 멍하니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 다음 날 있을 강의 준비를 마쳐야 했지만, 쉽사리 마음을 정리하고 정신을 쏟을 수 없었다. PPT도 완성해야 하고 읽기 자료도 다 써야 하고 대본을 쓴 후에 진행 연습도 해봐야 하는데, 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다. 버스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 광주까지 가는 버스 시간대를 찾아보았다. 그러면서도 선뜻 예매를 하지는 못했다. 광주는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가면 숙박을 하고 와야 하나, 혼자 가도 안전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메웠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광주로 가는 연대투쟁버스 소식을 접하게 됐다. 광주 소식을 듣고 심란한 사람들끼리 모여 광주를 지키러 가자는 이야기였다. 계속 고민만 하다가는 내 할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신청폼을 작성하고 버스비를 입금했다. 명치께에 뭉쳐 있던 뭔가가 사악 풀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거짓말처럼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다음 날 강의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때마다 ‘이놈의 서울에는 인간이 왜 이렇게 많아’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다른 사람도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돈이 생겨도 서울에는 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나는 경기도에서 대략 17년을 거주 중인 비서울인이다. 하지만 나는 서울 사람들과 함께 묶여 카운트될 수 있는 ‘수도권 사람’이기도 하다. 내게는 딱히 ‘수도권 사람 정체성’ 같은 게 없다고 생각했었다. 수도권의 인프라를 누리며 사는 것, 수도권인으로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수도권에서 아주 먼 지방에서부터 버스를 대절하거나 장시간 운전을 해 광화문 광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실 별스럽게 여기지 못했다. ‘대단하시다’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지방에서 수도권을 올라오는 일을 나도 모르게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내려가는 입장이 되니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2월 15일 토요일. 출근하는 날과 비슷하게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씻고 아침밥을 챙겨 먹었다. 응원봉, 충전지, 소켓과 여분의 건전지, 다이소에서 산 천 원짜리 깔개, 붙이는 핫팩, 털모자, 장갑, 목도리, 보조배터리, 약간의 간식과 물을 가방에 챙겼다. 1시간 정도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 집결 장소에서 연대투쟁버스를 기다렸다. 그나마 나는 지하철로 오갈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지만, 사는 곳 근처에 지하철이 없는 사람들은 버스를 타러 멀리 나가거나 직접 운전을 해 시위 장소까지 나갔겠지. 나보다 훨씬 번거롭고 돈과 시간도 더 많이 투자했겠구나. 얼마나 번거롭고, 긴장되고, 낯설었을까. 이런 생각들이 절로 들었다. 돈과 시간과 체력과, 그 모든 것을 합친 마음을 쓰는 일이 어찌 별일이 아닐 수 있을까. 지역 집회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곳의 의제는 어떤지, 그곳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있는지, 이런 것에도 실은 관심이 별로 없었다. 트위터에서 올라오는 지역 집회 관련 소식들을 보며 ‘여기서도 집회를 꾸준히 하고 계시구나’라는 감상을 느끼는 정도였다. 지역 집회에 직접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어서, 아니 더 정확히는 내려가 참여할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해서, 지역 집회에 관해 계속 모르는 채로 지냈던 것 같다.
광주에 내려가는 데는 대략 4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중 두 시간을 핸드폰으로 기획서를 쓰는 데 썼다. 하필 내려가는 날이 기획서 마감일이었기 때문에 미룰 수도 없었다. 버스 안에서 기획서를 마무리하고는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광주까지 갈 생각을 했을까. 일이나 학업, 약속같이 일상을 위해 써야 할 시간이 이들에게도 필요했을 텐데. 무엇 때문에 각지에서 모여 연대투쟁버스에 몸을 싣고 있을까. 어떤 마음이 이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광주로 내려가는 내내 연대투쟁버스 단톡방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은 ‘광주를 외롭게 둘 수 없었다’는 말이었다. 광주가 고향인 사람으로서, 연대투쟁버스에 탄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감사의 마음으로 붙잡고 울고 싶다는 말을 한 분이 있었다. ‘쌍도 사람이라서 미안하다’는 어느 분의 말에, ‘경상도는 부마항쟁의 도시죠’, ‘학생의거도 있었습니다’, ‘전태일의 도시죠’라고 앞다투어 달리던 댓글들도 기억한다. 외롭게 두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직접 몸을 움직여 함께하고, 누군가를 대신해 사과를 하면 그 사과를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주었다. 그 와중에 광주의 맛집을 알려주는 귀엽고 다정한 사람들도 있었다.
문득,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았을 때를 상상해 보게 됐다. 특정한 이미지가 엉겨 붙은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같은 말들은 실제를 담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라도 사람이라고, 경상도 사람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식의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실제가 있다. 그건 만남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실제다.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고 묻고 답하고 들을 때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언젠가 광주에 꼭 한 번은 들러보고 싶다고 생각하곤 있었지만, 이런 일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광주에 오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점심도 생략한 채로 달린 덕분에 오후 4시 반쯤 광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극우 세력과 충돌하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집회 장소인 5.18 민주광장 근처 주차장에는 각종 교회에서 온 탄핵 반대 버스가 즐비해 있었다. 극우의 상징이 돼 버린 지 오래인 미니 태극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광화문에서 보았던 깃발들과 무지개색으로 물든 투쟁 머리띠를 한 사람들을 따라 5.18 민주광장으로 걸어갔다. 머지않아 사진으로만 봐 왔던 전일빌딩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광주가 지켜온 민주주의에 내란 선동의 자유는 없습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전일빌딩 전면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한 번 찍고, 봉사자분들께서 무료로 나눠주시는 떡국을 먹었다. 광화문에서는 나보다 더 배가 고픈 분들, 간식을 챙겨 오지 않으신 분들이 드셨으면 해서 한 번도 무료 나눔 음식을 먹지 않았었는데, 왠지 광주에서는 먹어보고 싶었다. 점심을 거른 데다가 날이 추워서 그런지 따뜻한 떡국이 속을 데워주는 감각이 정말 반가웠다. 이런 정성스런 음식을 무료로 나눠주다니. 누군가를 먹이고자 하는 마음에 관해 잠시 생각했다. 대가를 생각하지 않고 기꺼이, 별스럽지 않게 무언가를 베푸는 마음에 관해서도.
“광주 시민 여러분,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오신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기는 광주입니다!”
사회자분의 멘트와 함께 5.18 민주광장에서의 집회가 시작되었다. 눈앞에는 전일빌딩과 금남로 표지판이, 등 뒤에는 시계탑이 있었다. 오후 5시 18분이 되자 시계탑에서 오르골 버전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내가 있는 곳이 정말 광주구나. 사람이 사람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었던 그곳이구나. 괜스레 금남로 바닥을 한참 들여다보게 됐다.
K-POP보다 민중가요를 더 많이 틀어줘서였을까? 광화문 광장에서의 집회가 ‘MZ스러움’이 넘치는 느낌이었다면, 광주 집회는 조금 더 엄숙한 분위기였다. 아니, 어쩌면 ‘광주’라는 이름을, 그 이름이 가진 상징성을, 광주라는 곳에 깃든 정신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짓밟으러 온 극우 세력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침착했고 일견 조용해 보였다. 그러나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따라 부를 때마다 응축된 씨앗 같은 분노가 느껴졌다. 어떤 험지든 뚫고 기어이 싹을 틔워내고야 말 것 같은 분노였다.
광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도, 집회에 참석하는 중간에도,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웠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광주’라는 이름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광주라는 이름은 하나의 상징이 돼 버린 지 오래인 듯하다. ‘민주화의 성지’, ‘빛고을’이라는 광주의 별명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고 생각한다. 광주는 자신들이 민주화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하나의 상징이 된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시선과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버거운 일일 것이다. 어쩌면 광주의 사람들은 ‘광주’라는 상징을 감내하며,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감히 해보았다.
한참 마블사의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가 개봉할 때, 나는 영화관에서 참 많이도 울었었다. 신파극도 아니고 멜로도 아닌 히어로물을 보고 어떻게 그렇게 울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가공할 만한 힘을 갖고 있고 재력과 인기도 엄청난 그 히어로들이, 나는 안쓰러웠다. 너무 많은 걸 어깨에 지고 있는 것 같아서. 힘과 재력과 인기 이면에 있는 연약한 내면과 상처가 보여서. 상처받은 인간들이 마치 아무 상처도 없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미래를 짊어지고 있다는 게 어떤 순간에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왜 저 사람들만 저런 짐을 지게 할까. 저들은 능력이 있으니 충분히 그걸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늘, 별 힘들이지 않고 모든 걸 감당할 수 있을까? 기함할 만한 능력이 없어도, 어떤 책임은 나눠질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울었던 것 같다.
때로 광주가, 광주의 사람들이 그런 히어로같이 느껴졌다. 광주나 광주의 사람들을 낭만적인 시선으로 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툭하면 극우 세력의 공격 대상이 되고 때로는 폄하의 대상이 되기까지 하면서도 어떤 품위를 지키고자 하는 광주의 노력이 가끔 나를 울컥하게 했다. 그래서 혼자 두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광주를 외롭게 둘 수 없어서 연대투쟁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는 사람들의 말은 그런 말이었던 것 같다.
집회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 잠이 들었거나 조용히 생각에 잠긴 사람들의 숨소리를 한동안 듣고 있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광주 집회에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망설이다 결국 움직이지 않았다면, 나는 내 일상조차 지키지 못했을 테니까. 뒤숭숭한 마음으로 일에도, 여가에도 집중하지 못했을 테니까. 민주주의나 파시즘 같은 거대한 이념에 관해서는 사실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건, 당신의 일상과 나의 일상이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제법 끈끈하게 연결돼 있다는 감각뿐이다.
광주에 다녀오고 나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보이는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몰랐던 것, 대충 보고 지나쳤던 것들이 시나브로, 때로는 거세게 내게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말벌동지’라고 불리기에는 모르는 현장이 너무 많고, 외부자라고 하기에는 몸과 마음 모두 깊숙이 연결돼 있다. 그 중간지점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배운 것들이 있다. 대단한 성찰이 담긴 글도, 학술적 가치가 있는 글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이 난국을 통과하며 느끼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써 내려가고 싶다. 당신을 통해 보게 된 것들을, 그리하여 달라진 것들에 관해 소박하게 써 내려가고 싶다. 그것이 2024년 12월 3일 이후를 살아가는 당신과 내가 느슨하지만 오래도록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일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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