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어위시 & 글쓰기 삶
고등학교 시절, 나는 메이크어위시 재단의 소원자로 뽑혔다. 몸이 불편했던 나는 늘 교실과 병원을 오가는 일상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세상의 중심에 선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우리 반 친구들 모두가 함께 초대받아, 학교 강당은 특별한 축제의 공간이 되었다.
커다란 스크린에는 노홍철 형이 보낸 영상편지가 상영되었다. 무한도전 팀의 빼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힘내라!"고, "네가 주인공이다!"라고. 영상 속 그의 눈빛과 목소리는 그 어떤 응원보다 진심이었고, 강당 안에는 따뜻한 웃음과 박수가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순간을 온몸으로 껴안고 싶었다.
아쉽게도, 무한도전 팀과 직접 만나 함께할 수는 없었다. 일정이 맞지 않아 그들은 멀리서 영상으로 응원을 전해야 했지만, 오히려 그 거리감이 그들의 마음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했다. 그들은 분명, 화면 너머에서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행사 후, 메이크어위시 재단의 공간에서 김태희 누나와 마주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 나는 어색하게 미소 지었고, 누나는 한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내 어깨를 살짝 감싸주었다. 그날 찍은 사진 한 장은 지금까지도 나의 책상 서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 중 하나를, 그 사진은 고요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마법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우리 담임선생님께서 갑자기 가면을 쓰고 무대 위로 올라오셨던 것이다. 어설픈 가면과 엉성한 춤사위. 요란한 음악에 맞춰 흔들리는 그 모습은 우습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선생님의 저질댄스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어설픔 속에 담긴 사랑과 진심은 누구보다 빛났다. 친구들은 배를 잡고 웃었고, 나는 조용히 눈시울을 훔쳤다. 나의 스승님...
그날, 나는 병약한 몸을 가진 학생이 아니었다. 동정의 대상도, 조심스레 보호받아야 할 존재도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의 환한 웃음 속에, 또 누군가의 서툰 춤사위 속에, 온전히 "나"로 존재하고 있었다. 세상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깊게 나를 안아주었다.
어쩌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가장 완벽하지 않은 곳에서 태어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아닌, 서로를 위해 던진 작은 헌신과 어설픈 사랑 속에서.
나는 지금도 그날을 가끔 떠올린다. 고단한 날이면,
차가운 침대 위에서도, 마음 한켠에서 그 웃음소리와 플래시 불빛,
선생님의 가면을 꺼내본다.
그리고 속삭인다.
"그때, 세상은 나를 가만히 품어주었지."
추억은 때로, 가장 힘든 시간을 건너게 하는 보이지 않는 다리가 된다.
그날의 조각들을 품고, 나는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살아간다.
그때, 나는 분명히 무슨 글을 썼고 칠판에 선생님이 링크 주소를 써두셨다. 지금 생각하면 졸필이었고, 부끄러움만 남았다. 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3.9km를 전동휠체어로 통학한 이야기가 아침 방송에 소개되었을 때에도, 나는 무언가를 썼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글이 기억나지 않는다.
전동휠체어와 함께 했던 그 긴 여정의 날들은, 결국 김태희 누나 옆에 앉아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 시절, 나에게 글쓰기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바로 그 순간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빛이었다.
서툴고 어설펐던 그 글들은 결국,
지금의 나를 이끌어 여기까지 데려왔다.
부끄러움 속에서도 나는 기록했고, 사랑했고, 꿈꾸었다.
그리고
그 모든 조각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다시 글을 쓰는 나를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