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겨울, 심부전 진단을 받고 심장약을 먹기 시작했다. 두 알로 시작했던 약이 3달 전부터 하나 더 늘었다. 새로 오신 교수님은 긍정적이면서도 진지하게 병을 함께 바라봐주셨다. 근육병에 대해 공부하신 분이라 반가웠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선생님들은 왜 인공호흡기가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희소병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통계적 개념을 넘어, 삶의 구조를 보는 시선을 요구한다. 사지근육 위축은 중증 외상이나 척수 손상과는 다르다. 루게릭병과 유사해 보이지만, 근육병은 근세포가 서서히 소멸되는, 되돌릴 수 없는 경로를 걷는다.
여름 평지에서 바람을 맞으며 산책할 때처럼, 일상 속 공기의 흐름이 때때로 마음을 깨운다. 그렇게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어르신이 말했다. "운동을 좀 하게." 선의였지만, 내게는 다르게 다가왔다. 나는 웃으며 감사를 전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내 병을, 내 몸을, 내 삶을. 귀엽게 웃으며, 내 방식으로 건강을 살아낸다.
어릴 적부터 나는 친절한 이웃에게 모든 걸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삶의 신비를 배워왔다. 건강은 누군가에게는 배경음악처럼 흘러가지만, 내게는 늘 깨어 있어야 하는 중심이었다. 내가 받은 건강은 우연이 아니었고, 그래서 더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나는 바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20대 초반이었다. 어느 가을 오후, 병원 응급실. 바깥에서는 낙엽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창밖의 햇살은 황금빛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독감으로 폐기능이 급격히 저하된 상태였고, 일주일 입원 중 3일째 응급실 침대에 누운 채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숨 쉬는 것조차 고통이었고,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이따금, 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 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가슴속에만 머물렀다.
그때 한 야윈 중년의 아저씨가 새벽 무렵, 진통제를 맞으러 혼자 가방을 들고 왔다. 아내를 깨우지 않고 혼자 병원에 온 것이다. 그는 전화를 받으며 조용히 아내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낮고 따뜻했다.
나는 그 순간 속으로 절규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말이 건네졌다."이보게, 학생. 언젠가 고통을 견딜 수 있게 될 거야." 그 말은 선종을 앞둔 신부님의 장엄한 미사처럼 들렸다.'이 사람은 예수인가?'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고통 속에서도 누군가를 위로하는 그 마음은, 모든 지식과 물질을 초월한 사랑이었다.
아저씨는 누가 봐도 시한부 암환자 같았다. 고요한 눈빛과 야윈 손등, 그리고 혼자 조용히 다녀간 새벽의 뒷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당시 나는 근육병 환자로서 아직 미숙했다. 병을 살아내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서른 중반으로 접어든 지금의 나는, 병중의 삶에서도 조금은 의젓해졌다.
그 모든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조용히 기도한다.
오늘도 전국의 응급실과 중증외상센터 팀은 바쁘게 사선을 오가고 있다. 밤낮없이 생명을 살리는 그 손길과 헌신에 진심 어린 경의를 보낸다. 때로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낸 당신들께 감사드린다. 누군가의 삶이 오늘로 끝나지 않고, 내일이 허락되기를 바란다.
"고통 속에서도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병든 시간에도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마음을 내게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