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성서 원고 청탁(제안), 기고를 쓰며

성모님께 전구와 하느님의 예비하심..

by 레푸스

생활성서에서 보내온 특집 계획서를 펼쳐 들었습니다.

한 줄 한 줄, 함께하는 필진의 이름들을 바라보다가

자연스레 마음이 조용히 주저앉았습니다.


신부님을 비롯한 필진의 면면은,

그 자체로 깊은 기도이며 오랜 사목과 글의 향기였습니다.

어느덧 제 손끝에서 멈칫거리던 커서가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느님의 일을 글로 담기엔 너무나 자주 흔들리고,

성찰보다는 감정이 앞서고,

기도보다는 망설임이 많고,

그 모든 안에서 매번 '부족한 나'만을 발견하는 사람.


그러나 한편으론 알 수 없는 평화를 느꼈습니다.

묵주를 감싸쥐던 그 밤들,

숨결로 드리운 기도 속에서 자주 떠오르던

성모 마리아의 고백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그 고백은 언제나 제게 ‘시작’의 용기를 주었습니다.

성모님은 ‘모든 것을 알고 시작한 이’가 아니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그저 하느님의 말씀을 믿은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믿음의 열매를 안고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자리에서 또 한 번 고백하셨지요.

“그분께서 비천한 당신 종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일컬을 것입니다.” (루카 1,48)


그 ‘비천한 종’이라는 표현이 요즘의 제 기도 안에서 자주 울려 나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침상에서 하루를 살아내며, 종종 영혼은 깊이 있으나 몸은 너무 느리기에 글 한 문장도 허투루 쓰지 못하고, 신중하게, 느릿하게 나아갑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 ‘느림’이 하느님께서 저를 빚으시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때때로,

세상에서 작고 보잘것없는 이들의 손끝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곤 하니까요.


묵주기도를 드리는 많은 교우들은 환희의 신비 중 제2단, 주님의 어머니시며 우리들의 엄마인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장면을 묵상할 때마다 이 장면, 이 고백을 되새깁니다. 성모님의 길은 화려한 행렬이 아닌, 조용한 방문이었고 엘리사벳을 돕기 위한 그분의 말은 비천한 종의 고백이었습니다. 사실 엘리사벳은 성령에 감화되었기에 주님의 어머니를 알아보고 환대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하느님의 예비하심이

저를 어디로 어떻게 끌고 가실지 모르지만,

듣고 따르며 걱정하지 않으렵니다.


누구보다 작고 느린 존재로 이 글을 시작합니다. 글로 뭔가를 드러내기보다, 하느님이 하시도록 내어드리기 위한 기록, 그런 고백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니 혹시 이 글을 읽는 이가 계신다면, 부족함보다 고백의 진심을 보아주시기를. 이 글이 당신의 기도와 하루에 조금이라도 위로와 등불이 되기를, 그저 그렇게 기도하며 씁니다.


(카를로 아쿠티스 조사하고 있어요. 그는 1991년 5월3일생, 저는 1991년 6월3일생이네요.

미디어 사도의 바통을 이어달리는 걸까요?! 성인은 되지 못해도 성인과 함께 믿음을 소유하렵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5화“오 주님, 이 미카엘을 왜 보고만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