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사목과 미사

by 레푸스

진정한 장애학은 예수님의 성심에 비추어볼 때, 성당 안에 있습니다. 나는 사제도 수도자도 목사도 아닙니다. 그러나 장애인 평신도로서, 교회 안 사목에 대한 막연한 회의감,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 없이 움직이는 일부 간부급 봉사자들의 완고함에 대해 침묵할 수 없습니다.


혹여 누군가 우리 가톨릭 안에서 나를 미워한다 해도, 동요하지 않겠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병은 진보든 보수든, 복음주의자든 해방주의자든, 서로 다른 이름으로 지상 성전에 내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평신도들이 자신이 세례 때 받은 왕직, 예언직, 사제직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현실은 더욱 슬픕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장애인들은 그 직무에서 제외된 존재였습니까? 그들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권한은 허구였습니까? 영의 치유와 육의 치유, 그 무엇이 먼저입니까?


만나는 육입니다. 돈이며 생존의 빵이지요. 하지만 만나를 언제까지나 계속 주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때가 오면 만나를 끊고, 그 사람이 스스로 부활의 길을 걷게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를 계속 육의 사람으로만 남게 만든다면, 심지어 잘해주고도 연좌제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장애 형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속으로 ‘바보’라 생각하는 사람은 성경이 말하듯 옥에 갇힐 것입니다. (마태오 5,22) 장애인을 동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함께 나누고 친교를 나눌 때, 우리는 비로소 구원의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인간적 욕망으로 바꾸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저는 ‘발달장애인 사목과 미사’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혹시 해당 가족이나 자녀, 형제를 둔 분들 가운데 미사 중 겪었던 무언의 눈초리, 냉담한 시선, 공동체 안의 외로움을 겪은 분이 계시다면 페이스북 DM 주세요. 그 고백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희망의 기도문이 될 수 있습니다.


– 신선비 미카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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