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책을 샀다. 구렁덩덩 신선비, 삼국유사!
시상이 쏟아진다~ '구렁덩덩 신선비'보다 신선비 미카엘이 더 알려지면 좋겠다.
사복이 열두 살까지 말을 못하고 걷지도 못하였으나 신라의 十聖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사복을 만나고 싶다. 사실 천국이나 극락은 그의 말처럼 설명하기 번거롭다. 내 생각에 세계의 지평선이 저승과 닿기까지 여정은 사라지는 신비다.
사복이 어미를 품고 사라졌지만, 나의 어미는 참척을 겪을 것이니
과연 '피에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오.
내 모습이 '빈사의 사자'가 아닐 수 없도다!
사복처럼 기이하고 오묘하다.
고전과 미술은 곧 자기 삶을 뜻해야 한다.
[삼국유사, 사복]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죽었다. 그때 원효는 고선사(高仙寺)에 머물고 있었다. 원효가 사복(蛇福)을 보고 맞이하여 예를 올렸으나, 사복은 답례를 하지 않고 말했다. 원효는 시신 앞으로 가서 빌었다. “태어나지 말지니, 죽는 것이 괴롭구나. 죽지 말지니, 태어나는 것이 괴롭구나.”
사복이 말했다.
“말이 번거롭다.”
그래서 원효가 다시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이 괴롭구나.” 두 사람은 상여를 메고 활리산(活里山) 동쪽 기슭으로 갔다. 사복이 곧 게(偈)를 지어 말했다.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라수 사이에서 열반에 드셨도다. 지금 또한 그러한 자가 있어, 연화장(蓮花藏)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네.”
말을 마치고 띠풀의 줄기를 뽑으니, 아래에 밝고 청허(淸虛)한 세계가 있었는데, 칠보난간에 누각이 장엄하여 아마도 인간 세상이 아니었다. 사복이 시체를 업고 땅속으로 함께 들어가니 땅이 다시 합쳐졌다. 원효는 곧 돌아왔다. 후세 사람들이 그를 위해서 금강산 동남쪽에 절을 짓고 도량사(道場寺)라 했으며, 매년 3월 14일이면 점찰회(占察會)를 행하는 것을 일반 규정으로 여겼다. 사복이 세상에 영험을 드러낸 것은 오직 이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