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의사가 필요한 사람은 예수를 찾는 법이다. 지혜의 은사를 청하는 신앙인은 주님의 말이나 글을 쓰는 삶을 살게 된다. 주님의 계획은 내가 생각하거나 청하기도 전에, 내 안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이루어진다고 지금의 나의 모습으로 증언한다. 나는 돈벌이나 인맥을 넓히기 위해 영성 에세이나 묵상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세속의 영광을 좇는다면, 연옥과도 같은 아름답지만 무의미한 글을 쓰며, 어떤 행복도 없는 고통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회개와 교훈이 빠진 채 작가라 불린다면, 그는 지옥불에서 일한다고 고백하는 셈이다. 천국이나 지옥이 단지 ‘장소’가 아니라 ‘지금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성서적으로 하늘의 새들처럼 굶을 걱정 없이 사는 나는, 간혹 개신교 신자들이 페이스북 그룹에 들어와 잔뜩 친구를 늘리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나는 무의미하게 친구 수를 늘리는 계산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인간 수집'은 묵상도 체험도 나눌 수 없는, 오직 곳간만 채우는 공허한 일일 뿐이다.
감성 소비와 역경 극복을 미끼 삼아, 감상만 남기고 가는 글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인류가 살 길이다. 소위 ‘감성 변태’라 불리는 글 공급자들은, 실은 상당히 위선적인 삶을 산다. 회심도, 고백도, 성찰도, 사랑도, 담담함도 빠진 글은 세상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부패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부를지 나는 모른다. 누군가는 “신부냐, 수사냐”고 비아냥댈 수도 있다. 그러나 성령님이 주신 은사를 외면함으로써 받게 될 심판보다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쪽이 구원의 도리에 더 합당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