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한 켤레의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기념에세이

by 레푸스

<양말 한 켤레의 마음으로> 신선비 미카엘 크리스마스 묵상/에세이

ㅡ인공호흡기에 심부전 환자의 회고


누워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보면 왜인지 양말을 신겨드리고 싶어집니다. 작은 발이 차갑지 않도록 말이죠. 마리아와 요셉께서 아기 옷과 이불로 보온을 했기 때문에 저는 양말을 드리려고요. 한밤중에도 포근히 감싸드리고 싶은 마음. 저는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 병을 보면 종종 불쌍하다 말합니다. 울혈성 심부전을 앓으며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지내는 삶이니까요. 어느 새벽, 호흡기가 갑자기 멎어 바람이 끊긴 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간신히 목소리를 짜올려 "엄마.."라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때 생명이 얼마나 가볍고, 또 얼마나 고달픈지를 배웠습니다.


어떤 이는 제게 "아깝다"고 했습니다. 붕괴성 자폐장애를 가진 자기 아들보다 삶이 더 힘겨울 텐데 생각이 많아서 고통스러워 보인다며 말했습니다. 그 말이 남긴 씁쓸함은 고통이 비교되는 순간에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삶과 고통은 서로 견줄 것이 아니라 각자 품어야 할 신비임을 저는 병상에서 배웠습니다. 저는 생각할 줄 알고, 언어로 세계를 더듬을 줄 압니다. 몸은 누워 있고 숨은 기계가 대신합니다. 정신과 약 없이 살아냅니다. 어쩌면 글에 미쳤기에 미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울이 찾아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제 안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웃는다고 덜 아픈 사람이라 하고, 살아낸다고 쉬운 삶이라 오해하기도 합니다. 주님 안에서 버티는 하루하루는 저에게 또 하나의 성탄입니다.


신앙은 약처럼 단번에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하느님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이도 있습니다. 고해성사와 순종을 하느님이 아닌 사람에게 드리는 굴복으로 오해할 때 신앙은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영성은 신학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위대했던 건 논증이 아니라 눈물의 회심이었습니다. 머리의 신학이 가슴의 영성이 될 때 말씀은 살아납니다. 말씀을 아는 것과 말씀을 잉태하는 일은 다릅니다.


오늘 우리는 인터넷에서 수많은 신부님과 목사님, 영성가의 말을 쉽게 접합니다. 그러나 정보의 풍요가 영혼의 충만을 보장하진 않습니다.


말씀을 중심에 둘 때, 신앙은 탄생으로 옮겨갑니다. 저는 카를로 아쿠티스를 떠올립니다. 디지털 세상에 살면서도 성체 앞에서 무릎 꿇었던 소년. 그의 믿음은 관념이 아닌 삶으로 드러난 예수님이었습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마음을 품는다면 신앙은 사유가 아니라 탄생이 되고, 지식이 아니라 영성이 됩니다.


저는 누워 있으나 쓰러진 것이 아닙니다. 숨은 기계가 넣어주지만 희망은 제가 선택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발끝에 양말 한 켤레 신겨드리고 싶은 마음처럼 작은 온기는 생명을 살리고 작은 믿음은 하늘을 엽니다. 병상에서도, 밤에도, 주님은 제 안에 다시 태어나고 계십니다.


판공성사가 다가옵니다. 저는 올해의 열매, 선행과 용서, 희생을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처럼 걸어 올리고 싶습니다.


올해 가톨릭평화신문과 생활성서에 글을 쓰고 나서 개신교 목사님들이 페이스북 친구 요청을 많이 주셨습니다. 다른 지붕 아래 살지만, 마음은 같다고 느꼈습니다. 혹 내 눈 속의 티끌을 보지 못하고 분열을 만든 건 아니었는지 되돌아봅니다.


천주교의 묵주기도를 존경하십시오. 개신교의 통성기도를 존경하십시오.

기도의 방식은 다르지만 그 뿌리는 모두 그리스도께 향한 사랑과 신뢰임을 잊지 않기 위해 예수님께서 남기신 기도, "아버지,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는 유언 같은 부탁을 기억합니다. 그 마음을 품는 것이 우리의 성탄이기를 바랍니다.


주님, 가난한 이들의 몸 위에도 성탄의 온기를 내려주소서. 제 안에서 다시 태어나시어 사랑을 잃지 않게 하소서.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형제애를 나누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멘.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17, 22~23)"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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