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by 레푸스

나는 어릴 때 우스꽝스럽게 걸었다. 투명한 하이힐을 신은 듯 발끝으로만 지탱해 나아가는 걸음은 이미 근육이 위축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발바닥은 땅을 붙잡지 못했고, 친구들은 걸음을 흉내내며 장난을 쳤다. 우리가족이 살던 다세대주택 골목에서는 아줌마들이 식재료를 다듬다 말고 말을 던지곤 했다.


판자집 마을이라고 불리던 동네에서 엄마는 청소와 도시락 봉사를 하셨다. 그곳엔 나와 같은 나이의 아이가 있었다. TV에서 보던 이야기처럼 조미김과 라면으로 버티며 아버지의 방임 속에 혼자 살아가는 아이였다.


어느 날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그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왔다. 나는 씻지 않은 냄새와 너저분한 행색에 당황했고, 마음속 첫 단어는 ‘더럽다’였다. 반면 여동생은 망설임 없이 연민을 향해 갔다.


“너무 불쌍해”라며 쫑알거리다가도 금세 손을 내밀어 친구를 대했다. 나는 “불쌍해 하면 안 돼. 도와줄 수 있어야 해”라고 말했지만, 그 말 안에는 미숙한 체면이 숨어 있었다. 결국 더럽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던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동생의 선함 앞에서 죄책감이 고개를 들었다.


세 살 무렵부터 나는 유난히 예민한 아이였다. 엄마의 뽀뽀도 손등으로 훽 닦아내고, 옷에 뭐가 조금만 묻어도 울었다. 사람들은 나를 “샌님”, “새삐”라고 불렀다. 이름 때문이 아니라 깔끔을 떨던 성격 때문이었다.


엄마가 돌보던 그 친구는 우리가 집을 정리하고 다른 동네로 떠날 때까지 종종 집에 와 밥을 먹고 놀았다. 녀석은 내 걸음을 따라 하며 웃기도 했는데, 내가 속상한 표정을 지으면 동생은 늘 친구 편을 들었다. 엄마에게 불평해봐야 “참을성 없는 쪼다”라는 말을 들을 게 뻔했다.


나는 처음부터 사지근육 마비의 모습은 아니었다. 병은 빠르게 발작하듯 찾아온 것이 아니라, 천천히 근육을 거두어 갔다. 발과 발목, 대퇴부와 종아리에서 시작된 약화는 몸통과 목, 손과 팔로 퍼져갔다. 걸었던 몸은 앉아있는 몸이 되었고, 앉았던 몸은 결국 누워 사는 몸으로 이어졌다.


하지의 근력이 더 떨어지자 동생은 자전거 앞자리에 앉아 페달을 밟고 나는 뒷자리에 있었다. 어느 날에는, 더 약해진 허리와 목의 힘이 나를 붙들지 못했고 결국 자전거에서 떨어져 뇌진탕으로 누워 지내야 했다.


그 무렵에 감정은 ‘수치심’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아가씨처럼 걷는다, 여자 선생님처럼 걷는다는 말은 내 남성성을 끊임없이 흔들었다.


공을 차는 일, 자전거를 타는 일—소년이라면 자연스레 갖는 세계가 내겐 조금씩 닫혀갔다ㅡ 누군가 나를 좋아해도 외면했고, 배우 지성을 닮았다는 말도 들었지만, 남성성은 끝내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나는 주로 여자아이들과 앉아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리스로마신화가 TV에서 방영될 정도로 유행하던 시절, 나는 병에 의해 거세된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남성성의 상처는 단순한 심리적 흔들림이 아니라 한 인간의 구조를 흔드는 질문이었다. 만약 기적처럼 병이 낫는다면 그 억눌림이 반동처럼 터져나와, 방황이나 바람기 같은 형태로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상실은 결핍과 충동을 동시에 낳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순은 언제나 단일한 폐허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동안 새로운 인식을 발명한다. 메리 셸리가 자신의 삶에서 고통과 균열을 지나며 걸작을 탄생시켰듯, 모순과 상처는 오히려 한 인간을 더 깊게 만든다.


한 존재의 진정한 강력함은 상처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부작용을 줄이는 사고력에 있다. 그것은 삶을 지속시키는 의지다. (신선비)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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