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핑퐁 놀이
“나는 대인관계가 너무 어려워. 일하러 가기 싫어. 어찌해야 해?”
큰 아이 어린이집으로 만난 친구 엄마가 두 달째 새로운 직장을 다니고 있다. 한동안 육아로 직장을 그만두어서 복직이 아닌 이직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건 나도 어려워.”라고 우스갯소리로 대답했지만 나는 진심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다. 더구나 그녀는 싹싹하고 예쁜 언어로 조곤조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잘 말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녀가 힘들다는 말에 조금은 의아하기도 했다.
서울에 살던 나는 결혼을 하면서 인천으로 오게 되었다. 결혼하고서도 마냥 놀 수가 없어서 구했던 직장이 세무사 사무실이다. 그때만 해도 세무에 관심이 많아서 면접에서도 세무사가 되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더랬다. 남의 돈을 관리하는 일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바로 포기할 줄 알았다면 그런 말 따윈 하지 말 걸. 경력은 없고 나이는 많았던 내가 세무사 사무실에 취직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이력서를 보내면 무경력으로 서류에서 광탈. 내가 취업하게 된 사무실도 3번이나 지원해서 얻어낸 결과였다. 이력서를 관리하던 과장님 메일로 두 차례 보내고 연락이 없어서 세무사님 개인 메일로 보냈더니 드디어 면접 연락이 왔다. 경력직을 뽑아야 하는데 계속 신입만 지원하길래 한 번 뽑아보자 싶으셨단다. 비서실에서 나 혼자 업무를 보던 나름 럭셔리한 생활을 하다가 다섯 명이 한 사무실에서 복작거리며 살아가는 생활을 해야 하니 참으로 불편한 게 한 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살아남아야 했다. 나를 버리고 다른 인격체로 살고자 노력했다.
사무실에는 79년생의 과장님 한 분과 82년생의 대리님 한 분, 88년생의 3년 경력 선배, 그리고 들어온 지 3개월 된 다른 업무의 직원이 있었다. 여자로만 이루어진 사무실이 텃세가 엄청 심하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세무 관련 자격증은 있었지만 실무 경험이 전혀 없던 나는 프로그램 사용하는 법도 알 수가 없었다. 이론과 실무는 전혀 다른 분야였다. 과장님은 나 들으란 듯이 직장이 학원이냐며 배우는 건 학원에서 배워 와야 하지 않겠냐며 신입을 뽑은 세무사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대리님은 경력은 꽤 되었지만 나이가 나보다 한 살 어리다 보니 내가 꽤나 불편한 모양이다. 3년 경력의 어린 선배는 성격 자체가 까칠하다. 그녀가 나에게 친절을 베풀 때는 무언가 나를 꼬여 자신의 업무를 함께 하게 하기 위해서일 때다. 내가 그곳에서 살아남는 건 단 한 가지, 나를 버려야만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속없이 굴면서 나를 낮춰야만 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연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때부터인 것 같기도 하다. 나와 다른 성격의 가면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이전 직장에서 비서 주제에 나름 정치놀음을 하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모든 것이 힘들고 피곤했다. 그런데도 생존 본능이 있어서인지 가장 쉬운 상대를 골라 적응을 하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전략을 택했다. 한 살 어린 대리님에게도 온갖 애교를 부리며 나는 모르겠다고 자료를 펼쳐 보이면 수학과를 전공한 그녀는 이론적으로 너무나 잘 가르쳐 주었다.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얻어야만 했다. 나는 무경력에 나이도 많았기 때문에 후에 이직을 할 생각을 해서라도 열심히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과장님은 내가 입사한 지 두 달 여 만에 이사 문제로 퇴사를 했고 새로운 과장님이 오셨다. 일상이 유머러스한 과장님 덕분에 사무실 분위기는 좋아졌지만 언젠가부터 나를 대하는 태도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내가 질투 대상이 아님에도 왜 그렇게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문제는 앞에서는 웃으면서 잘해주는데 뒤에서는 내 험담을 하고 다녔다는 거다. 나는 그때 업무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비서 출신이기에 전화 서비스 하나는 기가 막혔다. 혹시 세무사 사무실을 경험했다면 그들이 그리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간혹 느꼈을 수도 있다.(물론 친절한 직원들도 많다!) 항상 바쁘고 숫자에 민감하기도 하고 영업은 세무사가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업체 사장님들에게 친절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한다. 그에 비해 나는 비서실에서 갈고닦은 전화 실력으로 업체 사장님들에게 친절하다. 게다가 업무가 미숙하기 때문에 실수했을 때를 대비하여 친분을 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세무사님이 업체 관리 차 사업장을 방문하는 날에는 업체 사장님들의 만족도에 기분이 좋아져서 들어오시고는 했나 보다. 나는 일개 직원이었기에 그런 건 알지 못했다. 세무사님이 새로 온 과장님에게 내 칭찬을 하면서 그 과장님은 내가 그렇게 칭찬받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에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그 감정이 자라나 질투가 되면서 나를 험담하고 꼬투리를 잡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 질투심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에도 드러났기에 직원들은 새 과장님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나는 그래도 그럭저럭 어설픈 관계를 유지하고는 있었는데 내가 그분에게 돌아선 건 한 순간이었다.
어느 날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을 위해 다들 문 밖으로 나가고 있는데 내 자리에 전화가 왔다. 무의식적으로 전화를 받은 것이 화근이었다. 통화를 하는 동안 모두가 나를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과장님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그 전화를 왜 받았느냐고 말이다. 나는 퇴근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전화를 하는 건 그만큼 급한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기다리는 것이 불편했다면 먼저 갔으면 되었을 것을 그 한 마디가 나를 너무나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때 한참 임신을 기다리고 있던 때였는데 그 말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심하게 받아서 그 날 집에 돌아가자마자 하혈을 했다. 시기적으로 생리가 늦어져서 테스트할 날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나는 여전히 아이가 흘러내려간 거라 믿는다. 그동안 그녀에게 쌓였던 불만이나 불편함이 그 일로 폭발했다. 다른 직원들은 이미 과장님에게 등을 돌려 관계가 서먹할 때였는데 나마저 돌아서버리니 과장님 또한 폭주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홀로 나가 다른 사무실에 면접을 보고 바로 퇴사를 해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1년 여 정도를 더 근무하다가 큰 아이 출산일이 다가와 그만두게 되었는데 퇴사할 때도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 출산일이 9월인데 7월 말일까지 근무를 했다. 세무사 사무실은 평소에는 꿀직이지만 세무 신고 기간이 되면 야근은 보통이고 주말까지 나와서 내 담당 업체를 다 처리해야만 했다. 각자 맡은 업체가 있기에 다른 사람 업체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만삭에 힘들게 일을 하지만 다들 내 일은 아닌 것이다. 내가 그만두겠다고 말을 했을 때 세무사님은 알바를 붙여주겠다며 부가세 신고까지는 해달라고 했다. 그런 줄 알고 버텼다. 막상 그때가 되니 내 업체를 다른 직원들에게 할당하는 방법을 택하셨다. 그 바람에 그동안 힘들게 쌓아왔던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이제는 내가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거다. 내가 퇴사를 하고 나서도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자진 퇴사였지만 실업 급여를 받게 해 주었고, 육아휴직 후 다시 돌아와 달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이 직원들에게는 형평성에 어긋난 일이라 생각이 되었나 보다. 그도 아니면 내가 업무를 엉망진창으로 하고 왔던지. 2년여를 함께 지내왔지만 퇴사하는 순간 끝이 났다. 서운하지도 않았다. 나 또한 진심으로 그들을 대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여자들의 텃세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다. 새 직장으로 출근하는 그녀 또한 직업이 간호사인지라 여자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있다. 그곳이 얼마나 보이지 않는 전쟁터 일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만 하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이 드는 건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녀 또한 나처럼 어떻게든 직장생활을 버텨야만 하고 그것이 진심이 아니기에 감정적으로 피곤할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 조언도 해줄 수가 없다. 나 또한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일이기에 그저 오늘도 수고했다고 토닥여 줄 수밖에.
그림책 『 핑! 』에서는 우리가 ‘핑’을 하면, 친구가 ‘퐁’을 해요.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핑퐁 놀이, 탁구나 배드민턴처럼 우리가 공을 보내면 상대방이 받아치는 게임이다. 인간관계도 이와 같다. 우리는 상대가 잘 받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공을 보내야 하고 상대가 보내오는 공 또한 잘 받아쳐야 한다. 하지만 항상 내 생각대로 잘 오고 가는 것은 아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우리의 관계도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내가 ‘핑’을 보내면 ‘퐁’은 상대방의 몫이다. 반대로 상대방의 ‘핑’을 받을지 말지는 나의 몫이다.
사람은 사실 관계가 다이다. 관계가 편안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새로운 직장에서의 관계는 더더욱 내가 터전을 잡고 버티느냐 마냐의 중요한 문제이다. 그녀에게는 마음을 건네면 받아줄 이가 필요하다. 낯선 환경에서의 외로움은 그녀를 더 작게 만들고 자꾸만 벗어나고픈 충동을 일으킨다. 내가 ‘핑’을 보내야 상대방도 ‘퐁’으로 대답한다. 어쩌면 그녀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업무능력보다 멈추지 않을 핑퐁 놀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