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내가 되어 간다.

세상의 모든 분홍 몬스터들 화이팅!

by 슈몽

나는 호구병 환자다. 호구가 될까봐 쓸데없는 걱정과 의심의 눈으로 살아왔다. 누군가 호의를 베풀면 내가 이용당하는 건 아닐까 스스로 벽을 세워 거리를 두었다. 그리 살다 보니 마음 통한 사람 하나 없고 힘들 때 떠오르는 사람 하나 찾기 힘들다. 내 마음이 비좁고 비좁았다. 내 곁을 내주지 않으니 곁에 오는 이가 없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바깥세상과 차단되어 불안함과 괴로움을 느꼈다지만 나는 전혀 불편할 게 없었다. 그것이 내겐 일상이었으니까. 쇼핑은 온라인으로 해결하면 되고, 급한 장보기는 신랑 퇴근길에 부탁하면 된다. 아이는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부터도 등원을 잘하지 않는 아이였다. 나에게는 달라질 게 없는 일상이다. 대신 아이가 어려서, 운전을 못해서, 길을 몰라서, 사람이 낯설어서 못했던 많은 일들을 온라인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시작은 역시나 아이 때문이었다. 내 아이가 나와 같은 어른으로 자라지 않길 바랐다. 자존감 낮고 감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기하는 엄마 아래서 아이가 뭘 보고 자랄 수 있을까. 그놈의 자존감이 문제다. 우리 엄마는 내게 자존심은 알려주었지만 자존감을 알려주지 않았다. 살면서 자존심은 예기치 않은 곳곳에서 버려질 수밖에 없다. 나의 아이는 그렇게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된 나를 찾는 여정. 수많은 프로젝트를 동시 다발적으로 신청하고 참여했다. 그 안에서는 배우는 것도 많지만 수시로 상실감도 느낀다. 비교되고 위축되는 마음, 지금도 충분히 자기 몫을 잘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해보겠다고 뛰어드는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룹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고 잘하는 사람들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나는 투명인간처럼 타인의 성공담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처럼 영리하지 못하고 특출 나게 잘하는 거 하나 없는 나에 대한 실망감은 커져만 갔다. 자존감을 높여보겠다고 뛰어들었는데 남은 자존감마저 사라질 지경이다. 눈을 뜨면 몇 백개의 카톡이 단톡 방마다 쌓여져 인사를 한다. 나는 또 놓칠세라 미련하게도 그 카톡들을 다 읽었다. 단톡 방의 카톡들로 피로감을 느끼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로 인해 급변하는 세상에서 다들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혈안을 높이고 있을 때 나는 문득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하면 할수록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할수록 나와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그래서 선언했다.


“나는 뛰어가지 않을래. 천천히 내 속도대로 걸어갈 거야. 뛰는 사람이 있으면 걷는 사람도 있겠지. 나는 슬로우라이퍼로 살겠어. 내 인생은 이제부터 슬로우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 발표하는 자리에서 나는 어이없게도 멈춤을 선언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했던가. 멈춤을 선언하고 나니 나에게 불필요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굳이 내가 없어도 되는 자리들은 깔끔하게 정리하고 박수나 쳐주는 들러리 노릇은 그만 하기로 했다. 누군가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한다고 부추기는 바람에 시작했던 일들이 보기 좋게 실패했던 것을 경험 삼아 내 마음이 준비되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남의 떡이 커 보이기만했던 예전과는 달리 가끔은 내 떡도 이만하면 됐지 만족하는 날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세상에서 단 한 명 내 편이 되어주기로 했다.


“무엇을 해도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아님 말고.”










%EB%B6%84%ED%99%8D_%EB%AA%AC%EC%8A%A4%ED%84%B0.jpg?type=w1600 올가 데 디오스 글, 그림 / 김정하 옮김 / 노란상상




그림책 『분홍 몬스터』에서는 태어나기 전부터 남들과 달랐던 분홍 몬스터가 있다. 집도 나무도 친구들도 온통 하얗기만 한 그곳에서 덩치 크고 분홍색인 몬스터는 어딜 가나 눈에 띄었다. 어느 날 분홍 몬스터는 진정한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익숙하지만 모두가 똑같기만 한 세상에서 벗어난 분홍 몬스터는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분홍 몬스터다. 남들과 다르지만 이상하지는 않다. 호구가 될까 걱정하는 불치병을 앓고 있지만 그것 또한 나다. 남들과 다름을 인정하고 내 속도대로 걸어가면 내게만 보이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남들이 알게 되어 내게 알려준 것들 말고 내가 밟아보고 만져봐서 내 것으로 만든다. 그렇게 단단해져 내가 되어 가고 있다. 타인이 만들어놓은 ‘나’가 아니라 내가 빚어가고 있는 ‘나’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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