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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몽 Dec 23. 2020

방구석 골방책방

잠시, 머무르세요

“하다 보면 도와주는 분들이 나타날 거에요.”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그림책 필사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매주 한 편씩 그림책을 필사하고 짧은 평을 남겨 밴드에 올리는 이 모임은 나와 그림책을 처음 이어준 연결고리다. 1월에 진지하게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다시 살고자 나를 이끌어준 것은 그림책이었다. 그림책을 읽으면 심리상담을 받는 듯 마음이 고요해진다. 어려운 발걸음을 옮겨 굳이 병원의 차가운 의자에 앉아 나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잘 보여주고 이해받는 거 같았다. 그 시절 그림책이 좋다고 말하는 내게 모두들 지금 딱 그럴 시기라고, 아이들 키우다 보면 읽는 책이 그림책뿐이라 그림책에 관심이 가는 거라고 말을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자연스레 독서 지도사를 생각할 거라고, 정말 누구 하나 주의 깊게 들어주거나 관심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또 몰래 하기다. 사람들의 의미 없는 잔소리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그림책모임을 검색해보니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그림책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인 듯했다. 돌아가면서 발표를 한다고? 나는 죽어도 못한다. 어릴 적부터 발표라면 웬만하면 피하고 보자!라는 마인드이기에 그 흔한 독서모임도 참여할 자신이 없었다. 백번 양보해서 용기를 갖고 오프라인 모임을 참여하고 싶어도 아직 어린 돌쟁이 아가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즈음 매일 검색창에 기록되었던 것은 '그림책 온라인 모임'이었다. 온라인으로 독서모임을 한다면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어느 한 작가님이 모집하는 그림책 100권 필사 모임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블로그를 들어가 보았지만 이미 며칠 전에 마감이 된 후였다. 아쉬운 마음에 올해 마흔인데 그림책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함께 하면 참 좋았겠지만 늦어서 아쉽다, 다음 모임이 꾸려진다면 그땐 늦지 않게 신청하겠노라고 안부 겸 넋두리 같은 댓글을 남겼다. 작가님이 바로 댓글을 남겨주신다. 모임 모집할 때 왜 이 모임에 참여하는지 진정성 있는 글을 남겨달라고 했는데 나의 이유를 잘 들었노라며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는 두둥! 나 또한 필사 모임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10명으로 꾸려가실 거라던 계획과는 달리 나처럼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중간 이탈자를 감안하여 25명으로 시작한다고 했다. 오프라인 모임이 아니기에 아이 때문에 힘들 일도 없었고 1주일 동안 한 권만 필사하는 조건이 내게도 부담이 없었다. 그렇게 지금 46주 차 46권의 책을 필사했다. 100권이라고 하면 2년이 넘게 걸리는 시간이다. 동아리 지원을 받아 지금까지 딱 한 번 '타샤의 책방'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그때도 신랑과 아이들을 끌고 모임에 참여했다. 혼자서는 갈 용기가 도저히 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잠깐 만난 기억을 가지고 닉네임과 얼굴을 제대로 매칭도 하지 못한 채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그림책의 경우 아날로그 성향이 무엇보다 강하고 책을 직접 읽어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그림책 활동가 중에서도 온라인으로 넘어오는 걸 꽤 주춤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에서야 온라인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는데 필사 모임도 오랜 시간 필사만 하기에는 결속력이 떨어져 얼마 전부터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줌으로 인사를 나누기로 했다. 그 시간에서 그동안 꽁꽁 숨겨왔던 본캐들을 커밍아웃하는 시간들을 가졌는데 생각보다 대단한 분들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중엔 출판사 대표님도 계셨다. 그것도 그림책 출판사. 커밍아웃한 기념으로 그림책동무들에게 책을 선물해주신다고 하는데 평소 알고 있던 그림책의 출판사라 한 권만 갖기는 너무 아쉬워 추가 주문을 요청했다. 출판사에서는 따로 서점을 운영하지 않는 이상 판매는 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주신다. 그러면서 원하는 책이 있다면 추가로 더 보내주신다고 한다. 아, 괜한 말을 꺼내서 공짜로 그림책을 받으려는 꼴이 되었다. 절대 그러실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치며 대신 궁금한 거에 대한 답변을 부탁드렸다. 온라인 서점을 운영하고 싶었던 터라 어떻게 할지 막막해 나아가질 못하고 있었기에 조심스레 유통과정을 여쭸는데 너무 쉽게도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이 말씀을 해주신 거다.

 

“하다 보면 도와주는 분들이 나타날 거에요.”


이미 대표님이 내겐 그런 분이었다. 하려고 하니 짜잔 나타나 주신 분!


고등학교 시절 꿈꾸었던 것이 북카페였다. 책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해서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북카페를 운영하며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을 하고는 했다. 원하던 통창의 로망은 이루지 못했지만 나름 작아도 느낌 있는 골방 책방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좁아터진 방구석에서 나는 이제 책을 팔 수 있다. 책에 관련된 굿즈 상품을 만들고 그림책 테라피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몇 달이 지나면 이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강의를 하고 있을 테다. 골방 책방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마음에 든다. 공간의 욕심을 버리니 나만의 책방이 생겼다. 공간을 대여했다면 그곳을 책으로 꽉꽉 채우려고 하는 채움병이 발동했을 테다. 지금의 골방 또한 책으로 많이 쌓여 있어 회전 책장을 주문한 상태다. 책을 바닥에 쌓아두다 보니 딱 필요할 때 찾기가 영 불편하다. 아이들의 회전 책장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책방에 진열할 회전 책장이 필요하다. 내 책방에서 얼마나 많은 책들이 진열될지, 얼마나 많은 책들이 팔려나갈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드디어 첫 책을 진열했고 첫 책을 판매했다는 기쁨은 오래도록 가시지 않을 듯하다. 










그림책 『축하합니다!』에서는 '오늘 우리의 마음은 꽃이 되고, 오늘 우리의 시간은 별이 되어라는 글귀가 나온다.


2020년을 힘들게 버텨온 우리들에게 하고픈 말이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꽃이 되고, 오늘 우리의 시간은 별이 되어 어느 한순간도 버려지지 않았다고. 올 한 해 죽은 해라고 말하지만 죽어있던 단 한순간도 없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골방 책방에서 처음 판매하는 그림책은 꼭 [축하합니다!]여야만 했다. 누구보다도 잘 버텨온 나에게도 해주고픈 말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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