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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몽 Dec 22. 2020

미주학원 미쎄쓰킴

아날로그 감성팔이


얼마 전 언젠간 꼭 사고 싶었던 한글타자기를 들이게 되었다. 어릴 적 외삼촌댁에서 만져본 이후 처음이니 30년도 더 지났나 보다. 더 이상 국내 생산이 되지 않아서인지 중고 가격 치고는 꽤 비싼 가격을 치러야만 했다. 전문가가 아니기에 중고거래도 직거래를 할 수는 없다. 타자기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체에 입고되어 수리할 건 수리하고 깔끔히 정리되어 재탄생된 꽤 괜찮은 컨디션의 아이를 선택했다. 사실 선택이라는 말도 맞지 않는다. 나름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어서인지 그 업체에 새로운 타자기가 업로드되면 한 시간 이내 모두 품절되고 만다. 나 또한 타자기를 구매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업체에 상품이 올라오길 기다렸다. 어떤 제품이 좋은지 2벌식인지 4벌식인지 재고 따질 시간이 없었다. 컨디션이 좋다는 말에 결제 버튼을 바로 눌렀다. 구매를 하고 나서야 상품 상세 설명을 찬찬히 훑어보고 같은 기종의 다른 가격대를 검색해보았다. 같은 기종 치고는 좀 비싼 가격인가 싶었는데 그만큼 컨디션이 좋고 업체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다. 그 업체에서 그만한 가격을 내걸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상품은 4일 만에 받은 듯하다. 수리가 끝난 상품을 판매 창에 올리는데도 바로 발송이 되지 않아 속이 타들어갔다. 4일 만에 도착한 타자기는 꽤 사이즈가 컸다. 분명 사지 말라는 신랑 말을 뒤로 하고 내 멋대로 구매했기에 이것을 어디에 어떻게 둬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원래 있던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물 흐르듯 알게 하고 싶었다.(숨기고 싶었네!)


이 타자기는 타자 학원에서 사용하던 것이었나 보다. 타자기를 보호하는 겉 뚜껑에 '미주 학원'이라고 쓰여 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초록창에 검색을 해본다. 구로에 '미주 컴퓨터학원'이 검색되었다. '아마도 이 곳에서 왔을 거야.' 내 멋대로 상상해 버린다. 하얗게 새겨진 '미주 학원'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릴까 잠깐 고민도 했다. 지우지 못하면 다른 걸로 가려보기라도 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는다. 세월감 있는 타자기를 들인 만큼 그의 과거도 함께 하기로 말이다. 이건 뭐 사연 있는 상대와 결혼을 결심할 때의 비장함과 같다. 그리하여 타자기를 칠 때의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 '미주 학원의 미쎄쓰킴'이 된다. (양심적이지 않은가. 미스가 아닌 미쎄쓰다!)


도착한 타자기를 열었을 때 진하게 풍기는 잉크 냄새는 국민학교 시절 겨울 내 맡아보았던 교실의 석유냄새와도 비슷했다. 세월의 흔적을 온몸으로 내뿜고 있는 타자기와는 달리 너무도 말끔하게 차려입은 양복 입은 신사 같은 냄새가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다. 함께 동봉된 간단한 설명서를 읽어본 후 타자기에 손을 얹는다. 높은 타건이 마치 피아노 건반같이 느껴졌다. 신명 나게 연주하고 싶지만 현실은 독수리 타법. 내가 구매한 것은 2벌식 타자기라 현재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키보드와 배열이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그럴듯한 글자가 타이핑되고 있다. 2벌식 타자기를 갖게 된 후 4벌식도 갖고 싶다는 수집병이 발동되었지만 새로운 타자법을 배워야 하는 4벌식은 사용하다가 접어둘게 뻔하다.







그림책 『가을에게, 봄에게』 에서는  번도 만나지 못한 봄과 을이 서로에게 안부 편지를 보낸다. 내가 바라보지 못한 세상을 상대방의 눈으로, 입으로 전달받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지 못해 궁금해하는 세상도 내가 살고 있는 지금  곳이다.



나는 이 타자기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 내 상품을 구매해줘서 고맙다가 아닌, 잘 지냈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그의 안부를 묻는다. 나 혼자만의 추억놀이에 빠져 어려운 길을 헤매는지도 모르겠다. 핸드메이드 상품이라 제작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한 명 한 명마다 다른 내용의 편지를 쓰려니 시간은 더 지체된다.


어제 그림책 큐레이터 자격증 과정에서 마지막 과제 발표를 영상으로 찍어 밴드에 올렸다. 큐레이터라는 다소 딱딱하고 어려운 과정 속에 말랑말랑한 그림책테라피를 발표해서 조금은 이질감이 느껴지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웬걸? 달리는 댓글마다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모두들 힘들지만 내색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림책으로 위로받고 있었다.


빠름 속에서의 느림을 외치는 나.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찾아가는 나. 멈추며 달리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물 한 잔을 건네며 잠시, 머물러가도 괜찮다고 말하는 나. 이런 사람도 있어야 세상도 균형 있게 굴러가지 않을까?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감성팔이는 계속된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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