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시간
토요일, 밀린 과제와 자격증 시험을 마치고 홀가분하게 방에서 나오자 시간은 이미 밤 11시 50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온 몸으로 불만을 표현하고 있는 아이들 아빠가 보였다. 일요일, 아니나 다를까.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아오.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것이 성에 차지 않는단다. 내가 아무리 일을 하지 않아도 지금과 별 다를 바 없다고 말을 해도 원래 못하는 사람이 일을 한다고 더 못하니 꼴 보기 싫단다.(우씨) 결국 우리는 놀고 있는 큰 아이를 붙잡고 가족회의를 제안했다. 우리 집 공식 첫 번째 가족회의다.
“00야, 우리 오늘 가족회의 하자. 의장은 너야.”
유튜브로 학급놀이를 꽤나 봤던 아이는 자신에게 회의 진행권을 주자 신나 했다.
“00야, 오늘의 주제는 '엄마, 이대로 괜찮은가' 야. 00는 엄마가 바쁘다고 놀아주지 않으니까 힘들지 않아?”
애들 아빠가 유도심문을 하듯 뻔한 답변을 기대하며 물었다.
“00야, 엄마가 요즘 바빠서 일하느라고 00랑 같이 못 놀아줬잖아. 가장 힘든 점이 뭐야?”
아이가 성급한(?) 대답을 할까 봐 나 또한 급하게 아이에게 물었다.
“나는 엄마가 화내는 게 제일 싫어. 마녀 같아.”
“엄마가 왜 화 내는데?”
“내가 잘못해서”
“뭘 잘못했는데?”
“놀고 안 치워서”
“그럼 잘못해서 혼난 거니까 엄마가 일해서 혼나는 건 아니네.”
애들 아빠가 갑자기 우리의 대화 속에 끼어든다.
“00야, 엄마가 일하지 않으면 그렇게 크게 혼나지 않잖아. 그렇지?”
아이는 귀찮은 듯 빨리 회의를 진행한다.
“그럼 둘이 가위바위보를 해. 진 사람이 딱밤 맞는 거야.”
우리 둘은 아이가 시키는 대로 가위바위보를 했고 다행스럽게도 내가 이기며 아빠 딱밤을 때리고 끝이 났다.
이런 솔로몬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낳았다. 므흣.
“00야, 그럼 00는 엄마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엄마는 일을 해야 하는데 동생 때문에 일을 할 시간이 없잖아.”
“그럼 엄마는 동생이 깨기 전에 아침에만 일하는 건 어때?”
“아침에 일하는 건 괜찮아? 그런데 낮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기면 어쩌지?”
“그땐 내가 이해해줄게. 빨리 일하고 오면 되지.”
고맙다. 딸! 항상 아이들이 깨지 않은 아침 시간에 일을 하고 아이들이 잠들거나 밤늦은 시간을 이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업무와 집안일은 뒤죽박죽이 된다. 재택근무의 가장 큰 허점이다. 직장인들은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일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일을 하고 싶어도 굳이 가지고 오지 않는 이상 할 수가 없다. 재택근무는 언제든 일을 할 수 있고 언제든 아이들을 돌보아야 한다. 그 균형이 깨져버리는 것은 한 순간이다. 특히나 나처럼 초보 사장인 경우 처음 시스템을 잡기 위해 초반에 무리를 하다 보면 더욱 그렇다. 내가 조금만 부지런을 떨고 내 마음만 가다듬으면 될 일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내 시간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이 시간을 위해 내가 일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잊으면 안 된다.
그림책 『스트레스 티라노』에서는 일상적 스트레스에 대한 공감이라는 주제를 내건 만큼 우리의 일상 그대로를 보여준다. 퇴근이 늦는다는 아빠의 전화를 받은 엄마가 씩씩거리며 집안일을 하다가 어느새 엄마는 사라지고 소리 지르는 티라노만 서있게 된다.
읽는 내내 뜨끔하면서 너무도 내 모습과 같아서 웃음이 났다. 코로나로 인해 가정보육을 하는 엄마들의 일상이 딱 이렇다. 아이들과 24시간 붙어 있는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의미 있게 보내고 싶지만 현실은... 말하지 않아도 알지 않는가. 그래도 1년여의 시간을 이렇게 보내다보니 조금은 익숙해진 것도 있다. 처음엔 눈에 거슬리던 것들도 지금은 어느 정도 허용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났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존의 시간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균형 잡힌 시간들.
그것은 아이들과의 시간만큼이나 부부의 시간 또한 필요하다는 걸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