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우먼의 최후
2020년 올 한 해를 살아오면서 너무 많은 일을 벌려 놓은 탓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마무리하며 달려올 수는 없었다. 그래서 꾀를 낸다는 것이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며 내가 하지 못하는 것, 당장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가지치기를 시작했다. 분명 미안해질 상황이 생기는 일도 있겠지만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2020년 새해를 시작할 때 계획했던 것 중의 하나가 자격증 8개를 취득하자는 것이었다. 말이 좋아 8개지, 그중엔 아무런 지식 없이 시험을 치르기만 해도 발급비만 입금하면 받을 수 있는 자격증이 수두룩하다. 결국 돈을 내고 자격증을 사는 꼴이다. 우리나라 민간 자격증이 얼마나 많은지 교묘하게 비슷한 단어로 조합된 자격증이 많다. 그래서 나중엔 돈 주고 사는 자격증이 무슨 의미일까 싶어서 그만두기로 했다.
올해 마지막으로 도전했던 자격증은 그림책 큐레이터 1급 과정이었다. 2급 과정을 너무나 감동스러운 시간들로 채웠기에 1급은 당연히 들어야 하는 수순이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마음껏 그림책을 이야기하는 시간들이 좋았다. 2급 과정을 수강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하고 막막하기만 했던 그림책을 많이 알게 된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기대감을 갖고 신청하게 된 1급 과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과정이 시작되자 기대감은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2급 과정의 강사님이 그림책에 대한 애정이 넘쳐 났다면 1급 과정의 강사님은 오히려 그림책에 대한 경계심을 보이며 그림책을 의미 없는 감성팔이쯤으로 생각하는 거 같았다.(이 분은 그림책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독서습관을 갖고 많은 책을 읽기를 바라는 사명감을 갖고 계신 분이다!) 그림책 큐레이터가 아닌 북큐레이터에 가까운 수업이었다. 이미 독서지도사 등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수업에 참여도가 높았다. 결이 맞지 않고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기에 1급 과정은 수료하는데 의미를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이것 또한 발급비만 내면 자격증을 주지 않을까 싶으면서 그냥 하는 것이 더 이득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너무 하기 싫을 정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밀린 강의를 듣는 것도 곤혹스러웠고 과제는 너무 어려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앞으로의 내 그림책 활동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수업을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괜한 돈 쓰지 말고 그만두자!라고 결정을 했다. 그런데! 함께 수업을 들었던 다른 분이(라벤더님입니다!) 이런 말을 했다. 올 한 해 열심히 달려왔는데 마지막 오점으로 남겨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그 마지막 오점이라는 말에 내 마음이 꽂혔다. 쉽게 가지치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나에겐 오점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올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 버텨왔다. 너무 꽉 쥐고 욕심을 부리는 거 같아 하나둘 버려왔던 것들이 보이지 않는 점이 되어 나를 계속 뒤따라왔을 거란 생각을 하니 내가 버린 쓰레기들과 함께 달려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 또한 마지막 오점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토요일 어제 하루 종일 신랑의 눈총을 받으며 밀린 과제 5개와 1급 시험까지 작성하여 끝을 맺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과제들은 하나둘 하다 보니 할 만했다. 사실 1급 과정의 시험 채점 방식이나 이끌고 가는 강의가 조금은 불편하여 협회의 회장이자 해당 강사였던 선생님께 따로 메시지를 보내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과제를 다 끝마치고 나니 결국 나는 숙제가 하기 싫은 아이처럼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과제를 다 마치고 축제 분위기인 그들이 그들만의 리그라며 이해되지 않았는데 막상 내가 과제를 끝마치고 나니 그들의 축하를 받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들만의 리그로 끌려갔다.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에 그들의 열정에 보답하고자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대신했다. 협회장님은 내가 불평 의견을 전달했던 개인 메시지로 과제를 잘 마쳤다며 축하 인사를 건네며 강의는 끝이 났지만 마지막 과제에 대한 발표를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내가 파놓은 구덩이에 내가 빠져버린 꼴이 되었다.
그림책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요!』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를 보호해주는 울타리 같은 벽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서로를 가로막아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나쁜 벽도 있다. 타인과 나를 가르는 마음의 벽은 서로에 대한 편견만 성장시킨다.
나 또한 1급 과정을 수료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편견의 눈길로 그들을 평가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강의는 나만의 바람에 지나치지 않는다. 바람과는 다르게 진행되었지만 끝까지 강의를 놓치지 않은 것은 강의 자체만으로도 내게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과제는 내가 북큐레이터가 되어 북카페에 전시할 기획 제안서를 작성하는 거였다. 기획서를 써보지 않은 나로서는 너무도 막막했던 과제였지만 오프라인 공방이 있다면 하고 싶었던 것을 정리하니 꽤 멋스러운 기획서가 되었다. 실력들이 쟁쟁한 그들 앞에서 나의 것을 어떻게 발표해야 할지 막막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OK 우먼이기에 이번에도 OK를 외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발표 준비를 하러 간다... 또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