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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몽 Jan 28. 2021

엄마도 이글루가 필요해

진심 혼자 있고 싶다.

올해는 기필코 미니멀 라이프를 하겠다며 굳게 다짐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내 물건만으로도 집 안 한 가득인데 아이들 물건까지 더해지니 집은 더 이상의 안락함을 허용하지 않았다. 창고보다도 더 어지럽게 정리되지 않은 집에서 매일 버리고 치우고를 반복하고 있지만 다음날이면 언제 정리했냐는 듯 보기 좋게 다시 어지럽혀져 있다. 엄마가 제대로 정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인지 아이들도 노는 것마다 늘어놓기가 바쁘다. 바닥이건 책상 위건 물건 하나 제대로 올려놓을 공간 하나 없다. 집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 이전에는 집에 누가 올까 봐 걱정되기까지 했다.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다는 아이의 요청도 들어줄 수가 없었다. 시부모님이 방문하는 날에는 2박 3일 청소를 해야만 한다. 깨끗이 정리하고 나면 다시는 어지럽히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그 모습은 며칠 가지 않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관성의 법칙은 왜 여기에도 적용되는지... 모든 것은 내 습관의 문제이다.


거실엔 이미 아이들 미끄럼틀과 트램펄린이 나와 있다. 어디 그뿐이랴. 아이들과 함께 책 읽을 상상을 하며 야심 차게 준비한 책상과 책장도 있다. 한정된 공간에 이것저것 너무 많은 걸 꺼내놓은 상태인데 그런 곳에 나는 오늘 또 새로운 물건을 집어넣고 말았다. 두둥. 종이로 만든 이글루를 아시는가. 오랜 집콕 생활에 지친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도 모르게 주문을 해버렸다. 오늘 배송될 거라는 문자를 받고 첫째에게 재밌는 놀잇감이 온다며 청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날 늦게 잔 아이와 작업으로 밤을 새운 나는 12시가 다 된 시간에서야 일어났다. 아침을 건너뛴 점심을 차려 먹고 어지럽혀진 거실을 치우려고 하자 택배가 도착해버렸다. 아이들은 새로운 장난감에 눈이 동그래지며 빨리빨리! 를 외쳤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맨 손으로 이글루를 완성시켜야만 했다. 일반 집도 아닌 이글루 모양의 종이집은 삼각형 다섯 개를 이어 오각형을 만들어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 종이와 종이를 잇는 T단추 비슷한 단추 두 개를 꾸욱 누르면 고정이 된다. 그렇게 170여 개의 단추를 눌렀더니 엄지손가락과 손톱이 얼얼하다. 아이들은 그 사이를 못 참고 완성되지도 않은 이글루 근처를 서성이며 벌써 놀이를 시작한다. 오각형으로 이루어진 모양이기에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마무리 짓지 않으면 무너지기 십상이다. 사이즈도 생각보다 커서 꽤 큰 부피의 이글루를 내 손으로 짓고 있었다. 나는 왜 사서 이 고생을 하고 있단 말인가. 애들 아빠나 오면 같이 할 것을.


커다란 이글루를 완성시키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며 성화다. 얼얼한 손가락과 오래도록 구부정하게 앉아있어서 굳어버린 허리를 부여잡고 주방으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폭풍 잔소리를 시작한다. 엄마 손이며 발에 걸리는 것들은 모조리 버려버리겠다며 첫째에게 "이게 집이야?"라고 물으니 아이는 "집이지!"라고 대답한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어?"라고 말하니 "응!"이라고 대답한다. 7살 아이의 반항이 시작되고 있었다. 의미 없는 말장난으로 힘 빼지 말아야지. 내가 말을 말자! 대충 바닥을 쓸고 널브러져 있던 장난감을 밀어내어 이글루를 그럴듯한 구석으로 밀어주었다. 아이는 오늘 밤 그곳에서 자겠다며 이불과 베개를 가지고 들어간다. 아이들의 집이라 그런지 입구가 너무 작아 한 덩치 하는 나는 들어갈 수도 없게 생겼다.


아지트. 딱 아이만의 비밀공간이었다. 이글루는 맨 위 지붕만 별 모양으로 뚫어져 있을 뿐 출입구를 제외한 사방이 모두 막혀 있다. 세상과의 완벽 차단이 되는 듯했다. 문득 그 공간이 부러워졌다. 나도 모르게 "나도 갖고 싶네. 이글루"라는 말이 새어 나왔다.


우리 집엔 엄마 작업실이라고 정해놓은 끝 방이 있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모두의 방이 되어 버렸다. 내가 방에 들어오면 둘째가 울면서 방문을 두드린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안고 자리에 앉으면 첫째와 아이 아빠가 숨바꼭질을 하며 작업방에 숨어든다. 나만의 공간은 자연스럽게 묵살당했다.


아이들의 이글루를 바라보며 왠지 모를 부러움에 울적해졌다. 아이들의 공간은 지켜주면서 정작 내 공간은 지켜지지  못함에 서운함이 몰려온다. 이글루의 입구는 아이들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게 나와있다. 마침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둘째의 뒷모습을 보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오른다. 나도 몸이 작아져 저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딱 이글루만큼의 공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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