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대화
내가 그림책 테라피스트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데는 2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둘째가 여전히 엄마 껌딱지라 혼자 있는 시간을 통 낼 수 없다는 것과 또 하나는 신랑의 후원이 영 미적지근해서이다. 둘째 아이는 돌이 되기 전까지 손이 전혀 가지 않는 아이였다. 사람들이 육아를 발로 한다고 말할 정도로 잘 먹고 혼자서도 잘 자는 순하디 순한 아이였다. 돌이 되기 한 달 전쯤일까. 연말 모임을 위해 오랜만에 동네 엄마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날 딱 하루 아이를 아빠에게 맡겨놓고 4시간 정도 자리를 비웠는데 그때부터 아이는 나에게 철썩 달라붙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아직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방심했던 나의 실수였다.
아이는 평소에도 엄마 무릎에 앉아있어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 때가 많다. 걸을 수 있음에도 안아서 냉장고를 다녀와야 하고 화장실 볼일을 마친 언니의 뒷수습을 위해 자리를 뜨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있는 낮시간에는 당연히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기에 외부활동이나 그림책모임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내가 가능한 시간은 애들 아빠가 퇴근한 밤 시간인데 신랑은 첫째와 놀아주느라 둘째는 나보고 맡으라는 식이다. 둘이 원하는 바가 달라 혼자서 둘을 맡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몸놀이를 좋아하는 첫째에 비해 둘째는 아직 어리기에 제한적인 것이 많다. 그러다 보니 밤에도 둘째는 내 차지가 된다.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을 듯하여 올해부터 온라인으로나마 그림책 모임을 시작했다. 1주일에 딱 하루 2시간 정도만 아이를 봐달라고 신랑에게 미리 부탁을 했다. 항상 신랑에게 볼멘소리로 도와달라고 말하면 알겠다고 시작하라고 말을 한다. 그 말을 철썩같이 믿은 내가 잘못이지...
1주일에 한 번 그림책모임이 있는 수요일이었다. 밤 10시부터 12시까지 약 한 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의 이야기를 나눈다. 제발 그 시간만큼은 아이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하지만 둘째는 어김없이 엄마가 방에 들어가니 울기 시작했고 신랑은 둘째를 나에게 넘기고 가버렸다. 아무래도 모임에 집중할 수 없던 나는 결국 신랑을 불러 아이를 데려가라고 말했다. 신랑은 아이를 안고 내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버린다. 속마음을 들춰낼 수밖에 없는 모임인데 옆에 신랑이 있으니 너무 불편하다. 신랑에게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 돌아오는 소리라고는 “그럼 애를 울려?”라고 말한다. 한참을 바라보던 나는 “그래야지.”라고 말해버렸다.
신랑의 얼굴은 이미 불만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바쁜 회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하루 종일 아빠를 기다리는 첫째와 놀아주느라 지칠 만도 하다. 게다가 요즘 내가 몸이 안 좋아 집안일을 신경 쓰지 못해 집은 엉망이고 어제는 직접 저녁까지 차려먹게 했다. 왜 항상 나만 바쁘냐며 왜 아이들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는 거냐는 것이 그의 불만이다. 나는 정상화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기다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약 없는 기간을 마냥 기다리기엔 지칠 수밖에 없다. 공동육아를 외치면서 정작 나는 공동으로 육아에 참여하고 있느냐고 신랑이 묻는다. 왜 공동육아는 남자들에게만 해당이 되는 건지 퇴근 후에 함께 육아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아이들을 봤으니 신랑이 퇴근하면 아이들을 아빠가 돌봐주었으면 했다. 신랑이 퇴근하고 오면 나는 반대로 내 일에 출근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듣고 보면 신랑 말이 틀리지도 않았다. 나는 신랑이 없는 낮시간에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주된 업무이다. 그러니 신랑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함께 육아에 동참하는 것이 맞다.
그는 함께이길 바라고 모든 것이 내 욕심에 의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늦은 밤 신랑은 아이가 엄마와 떨어져 우는 것을 막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편의점을 다녀왔다. 추운 겨울밤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상황을 만드는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냐고 묻는다. 그래서 미리 내가 양해를 구하지 않았나. 1주일에 딱 두 시간 만은 책임져 달라고. 아이를 달래지 못하는 것은 아이를 떨어트린 내 잘못이 아니라 신랑의 스킬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왜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될까 봐 걱정하면서 가족에게는 민폐를 끼쳐?"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니 아이를 데려가 달라고 말하는 내게 그는 이렇게 말을 한다.
아니, 그건 가족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책임감이야. 내 일을 인정하지 않는 당신의 마인드가 문제는 아닐까.
오늘도 우리는 명쾌한 해답 없이 물음표만 가득한 대화로 끝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