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가족들은 한 번에 불러서는

제주 한달살이 - 3

by 다온
1000000316.jpg

제주도에 떨어진 게 11월 중순, 한달살이의 삶을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의 일정은 이미 예약돼 있었다. 도착 바로 다음날부터 정확히 7박 8일간의 릴레이 손님맞이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3박 4일은 우리 가족이, 그리고 나머지는 어머님께서 찾아오셨다. 심지어 공항에서 픽드롭과 픽업을 연이어하는 죽일 놈의 의지.


가족들과 함께 움직이다 보니 우리의 하루는 빽빽한 관광으로 가득 찼다. 제주에 왔으니 유명하다는 곳은 한 번씩 봐야 하지 않겠냐는 의무감에 짓눌렸다. 특히 성산일출봉은 양가와 함께 두 번이나 갔을 정도다. 평소에 먹지 않는 기름진 음식들을 먹어대느라 속은 부대꼈고, 특별한 밥상만큼이나 지갑은 특히나 더 얇아졌다. 저녁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에 밤이면 그대로 곯아떨어지기 일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어디에 가고 싶냐", "뭘 먹고 싶냐"는 물음에 "모르겠다"라거나 "알아서 하라"는 두루뭉술한 대답. 그 모호함 속에서도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곳에 데려가고 싶다는 욕심에 한숨을 흘린 지도 서너 번. 문득 깨달았다. 가이드들과 여행사들은 바로 이런 고객들의 막연한 기대 속에 머뭇거림과 변덕, 이런 것들을 먹고 사는구나 하고. 그리고 결심했다. 다음 여행은 무조건 패키지다!


피로한 일주일 가운데 그래도 잘했다고 꼽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매일 아침 러닝하는 루틴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비가 오거나 바람이 차다는 러닝보다는 산책이라는 말에 더 어울리게 움직인 날도 많았다. 그래도 아침에 집 밖을 나섰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 짧은 시간이 내가 내 시간을 통제하고 있다는 끈이었다.


그렇게 7박 8일간의 긴 여정이 지났다. 가족들을 배웅하고 집에 돌아온 우리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낮잠만 5시간을 내리 잤다. 순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들을 초대한 것까지는 좋다 이거야, 그런데 괜히 한 번에 불러서는 꿈같던 제주 생활을 꾸려갈 에너지조차 잃었나에 대한 자조 섞인 물음이었다.


하지만 이내 알았다. 이 피로 역시 루틴이 깨지지 않고 온전히 내 시간이길 바랐던 나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면서도 나를 지켜내고 싶었던 마음이 예상치 못하게 체력에서 충돌을 했다. 결국 이번 일을 통해서도 배웠다. 어떤 이상적인 삶을 원하든 에너지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침대에서 일어난 남편과 나는 웃으며 말한다. "한동안 관광은 안 해도 될 거 같은데?" 그리고 이제 진짜로 우리의 삶을 재정비하기로 한다. 관광객 모드에서 벗어난 일상의 계획들을 짠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고 책을 보다가 점심을 먹고 함덕해수욕장 스타벅스로 향하는 일상. 각자의 일을 하다가 저녁을 먹고 다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드는 일과.


우리는 매일 같은 곳에 주차를 하고, 비슷한 자리에 앉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꽤나 많은 제주의 해수욕장 중 하나의 바다만을 바라본다. 하지만 어제의 바다는 오늘의 바다가 아니듯이 우리의 하루도 지나간 것, 앞으로 올 것과는 다르다.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이 주는 행복, 그리고 그 안에서 찾는 조그만 다채로움들을 이번 여행지에서는 마음껏 느끼고 있다. 비로소 우리는 그렇게 제주에 물들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