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구수한 제주 우리 집

제주한달살이 - 4

by 다온
1000000314.jpg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제주도를 오기 위해 남편과 숙소를 고를 때였다. 뒤늦은 예약에 싸고 예쁜 곳들은 모두 매진,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 나의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한참을 숙박 플랫폼들을 쏘다녔다. 제주 물가를 생각하면 밥을 해 먹어야 하니 취사시설이 있어야 했다. 아침에 책 읽고 글 쓰는 로망을 실현하기 위한 넓은 테이블과 의자는 필수였다. "야외 테라스도 있으면 금상첨화지."


무엇이든 그렇다. 하방은 막혀있지만 상방은 뚫려있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다 보면 가격은 한 달에 200, 300, 500... 천정부지로 솟구쳤다. "이 돈이면 유럽을 가겠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조그만 원룸에서 지낼 수는 없었다. 나의 버킷리스트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러다가 남은 선택지는 딱 두 곳, 1층에 도서관과 편의시설이 있는 한 오피스텔과 골짜기에 있는 주택이었다. 가격은 1.5배가 차이 났지만 두 번째 장소엔 아주 넓은 테이블이 있었고, 심지어 방도 두 개였다. "가족들이 와서 자고 가면 딱이겠다" 그치. 남편은 '평생 1번', '인생 버킷리스트', '로망'과 같은 감성의 언어를 울부짖는 나를 말릴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천읍의 한 단독주택에 머물게 됐다. 1층은 주인으로 추정되는 노부부가 살았고, 우리는 2층에 묶게 됐다. 1층과 2층은 계단조차 분리돼 있었기에 우리만의 공간처럼 여겨졌다. 집 앞에는 기역자로 테라스가 있었고, 2인용 노란색 철제 의자와 테이블이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눈앞에는 초록초록한 밭이 있었고, 저 멀리는 바다가 보였다. "여기서 아침에 커피 한잔 하면 인생 다 가진 기분이겠다." 결국 바람이라는 핑계에 못 이겨 지키지 못할 바람이긴 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뭐니 뭐니 해도 테이블이었다. 7~8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원목 테이블이 사심을 좀 보태 하버드 도서관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한 일은 서울에서부터 이고 지고 챙겨 온 약 30권의 책을 벽에 진열한 것. 독서와 글쓰기의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거기에다가 앞뒤가 넓어 누우면 꺼지는 듯한 소파와 엄마도 탐내고 간 빈백, 그리고 대형 티비는 덤이었다. 물론 냉장고와 하이라이트, 밥솥, 조리도구 등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도 모두 구비돼 있었다. 방 2개의 천장은 조금 낮아 허리를 다 펼 순 없었지만, 그래도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냈고 창밖에는 초록초록한 나무들이 가득이었다. 그때까진 좋았다.


그런데 조금 지나 보니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가 올라오는 게 아닌가. "오빠, 안 씻었어?" 괜히 엄한 남편만 잡았다. 알고 보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밑이 장독대였는데 거기서 장냄새가 계속 올라오는 것. 화이트머스크 향이 가득할 것 같았던 집에 장냄새라니... 나의 작고 소중했던 로망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거기에다가 집은 얼음장처럼 추웠다. "제주는 도시가스가 안돼 있고 기름보일러를 사용합니다. 난방비가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찾아보니 기름보일러는 하루 종일 따뜻하게 살면 한 달에 50만원은 아주 가뿐히 깨진단다. 그때 알았다. 제주살이... 여행이 아닌 현실이다.


하루 살고 갈 호텔이라면 컴플레인을 걸거나 웃으며 넘겼겠지만, 여기선 나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창문을 덜 열고 옷을 껴입는 방법을 선택했다. 역시 로망보다 무서운 건 카드값이지... 그렇게 소박하고 구수한 제주집에서의 일상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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