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달살이 - 2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향한 함덕해수욕장. 가볍게 조깅이나 해보자며 나선 그곳에는 제주감귤마라톤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제주마라톤이면 제주마라톤이지 거기에 감귤은 왜 붙냐며 남편과 킥킥대다가 대뜸 뛰는 대열에 합류한다. 모든 사람들이 마치 우리를 앞지르는 거 같이 느껴졌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최선을 다해 추월해야만 했던 서울살이와 비교되는 점이다. 이건 남이 아닌 나와의 싸움이 아니라는 걸 안 것부터가 오늘의 시작은 성공이다.
퇴사하고 맞는 첫 일요일은 내일의 출근을 걱정하지 않고 그저 여유롭기만 하다. 문득 떠오르는 '이제 뭘 먹고살지'라는 두려움에 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은 두려움에 매몰돼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매일 아침 해를 쬐고, 내일 걱정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지 않는 일상,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움직이는 나날. 상상만 했던 날들이 눈앞에 가득한 이 상황을 즐길 때다.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라면 나를 행복하지 않게 하는 빈도가 줄어든 만큼 나는 행복하기 마련이다.
일과를 끝내고 돌아와 우연히 한 영상을 봤다. 이름 모를 유튜브 채널에서 본 '청담동에서 만난 사업가의 조언'이라는 썸네일의 영상. 그녀는 회사를 안 다니고 빨리 독립을 한 이유에 대해 말한다. "월급을 받으면 빨리 독립을 못 하니 인생의 즐거움이 줄어든다", "실패해도 괜찮다. 많은 경험을 하면 아는 만큼 생각하고 보는 만큼 느끼니까",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무조건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재밌는 건 한 댓글이었다. "원래 실패한 사람 천명 무덤 위에서 성공한 사람 1명이 떠드는 법."그리고 거기엔 또 170개가 넘는 댓글들이 달려 시시비비를 가리며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성공담을 비꼬는 말, 대다수의 월급쟁이들의 선택을 비웃지 말란 말 등...
이걸 보면서도 느끼지만, 인생이라는 게 참 달콤 씁쓸하다. 저 영상에서 인터뷰를 한 저 여성사업가도, 여기에 댓글들을 단 사람들도 분명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 누구는 나아가기 위해 도전을 하지만, 누구는 지키기 위한 도전을 한다. 그게 창업이든, 회사든, 성공이든, 실패든 누가 누구를 향해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각자의 기준은 각자의 상황에 맞게 다 다를 뿐이다. 그러니 남과 비교하며 나를 세울 필요는 없다. 내 작은 성공이 누군가에게는 그리도 바라는 목표일 수 있으며, 나의 뼈 시린 실패가 또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날 디딤돌이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단 하나다. 어떤 자리에 있든, 나를 바로 세우는 일. 성공과 실패 그 모든 게 나의 행동에 따른 결과라 생각하며 겸손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것.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뭘 하고 싶을까. 나는 뭘 해야 할까. 그 사이에서 여전히 갈팡질팡하며 제주살이 셋째 날 밤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