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막판, 오늘은 보너스게임

제주 한달살이 - 7

by 다온
1000000315.jpg 섭지코지에서 본 일몰

"헐 어떻게... 왜지...?"

제주도의 카페에서 같이 일을 하던 중 남편이 심각하게 읊조렸다. 친구의 사망 소식이었다. 나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남편으로부터 몇 번 들은 이름이었다. 30대 중반 청년의 아주 갑작스러운 죽음.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건 사고였다.


어렸을 때부터 뭐든 최선을 다했고, 삶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건물 외벽 청소를 하고 있었다. 중년 아저씨들이나 하는 일에 뛰어든 30대 중반의 청년이 처음부터 환영을 받은 건 아니었을 것이다. 생명을 담보로 건물을 타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에겐 지켜야만 하는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그라고 해서 상상이나 했겠는가. 아침에 본 아이의 얼굴이 마지막이 될 줄...


결혼한 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그의 죽음만큼이나 아내의 삶이 걱정됐다. 300일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안고 다시 오지 않을 남편을 그리워하는 남은 날들이. 부디 그런 일을 하지 말게 말렸어야 한다고 자책하지 않길.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있다면, 너무 좋은 사람이었던 어린 아빠를 이르게 탐낸 만큼 남은 가족들이 단단하게 땅에 발 디딜 수 있도록 꽉 잡아주길. 10여 년 전 떠나보낸 아버지에게 타인의 무탈을 빌어본다.


남편이 슬퍼하는 모습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선배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그간 만났던 사람 중에 가장 다른 이를 헤아리려 애쓰던 사람. 늘 회의 말미에 "건의할 거나 대신 말해줄 게 있다면 말하라"며 윗사람의 도리를 자처하던 이. 본인 투병으로 힘든 와중에도 "힘들었지,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던 선배. 그가 문득 보고 싶어 졌다.


사실 그의 죽음은 회사를 그만두게 한 트리거 역할을 했다. 정말 천정벽력 같던 췌장암이란 병명과 함께 볼 때마다 말라가던 그, 그리고 얼마 뒤의 사망 소식. 너무 좋았던 사람이라 속 안이 상해가는지도 몰랐나 보다 싶었다. 그즈음 내 머리에서 경고음이 들려왔다. 스트레스를 정말 심하게 받은 날이면, '나 이러다가 암 걸릴 거 같은데'라는 문장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그런데 선배까지 가고 나자 몸의 신호를 무시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게 됐다.


하루를 더 소중히 살자. 그렇게 회사를 떠나 넘어온 제주에서 한 젊은이의 소식을 듣고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니가 지금 여기에 왜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자고.


어쩌면 하루를 보냈다는 건 도사리는 불행 속에 혹시나 가까이 왔을 하루치의 죽음을 견뎌낸 것.

그래서 오늘을 살아낸 건 특별하거나 대단한 일이 없었더라도 아주 잘 산 것일 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행운이 오늘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는 방증.

그러니 즐겁게 살 것.

어제가 막판, 오늘은 보너스게임이라 여기며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사랑할 것.


오늘따라 제주물은 참 퍼렇고 파도는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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