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산과 감귤이 흐르는 제주의 운동

제주 한달살이 - 6

by 다온

세상에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심혈관 질환 예방, 다이어트, 만성질환 위험 감소, 근골격 강화...언론과 의사선생님 심지어 내 늘어나는 살까지도 항상 운동의 필요성을 부르짖는다.


그러나 운동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하기 싫어서. 물론 여기에도 여러 가지 뒷꼬리가 붙는다. 갑자기 무난하던 컨디션이 운동만 하려면 안 좋아지고, 연락 없던 친구와 약속이 잡히기도 한다. 특히나 가장 치명적인 유혹은 '내일부터 하면 돼'라는 달콤한 속삭임이다. 내일부터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기도 한다.


제주에서는 다를 것이라 여겼다. 나와 남편은 '공기 좋은 곳에서 뛰면 얼마나 좋겠냐', '바다 풍경을 바라보면서 하는 러닝은 천국이겠지' 하는 기대감에 운동복만 5벌씩 바리바리 싸들고 제주로 넘어왔다. 완벽한 환경에서는 완벽한 루틴을 꾸릴 수 있을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이었다.


하지만 이런 환상은 일주일 만에 무참히 깨졌다. 범인은 제주의 3대 명물, 칼바람이었다."여기는 추워도 너무 춥다, 겨울에 뛰다가 감기 걸리면 답도 없어." 둘 중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차피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테니. 결국 우리는 바람을 핑계 삼아 러닝화의 끈을 풀었다.


야외 러닝을 포기한 우리는 실내 운동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헬스장과 필라테스샵. 작은 마을이 이게 웬 떡인가 싶어 제주로 오기 이전부터 가격을 알아보고 예산에 넣어놨었다. 특히 서울에서 막 재미를 붙이던 필라테스에 대한 기대가 컸다. 초록초록한 들과 파랑파랑한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통유리 필라테스샵이라니!


하지만 이것 또한 쉽지 않았다. "4대 1 그룹 레슨은 지금 꽉 차 있어요." 서울에서는 과장 좀 보태 100미터에 하나씩 있을 만큼 많았는데 여기는 서울이 아니었다. 그 큰 센터에 선생님이 한 명이라니... 결국 우리는 미련 없이 위층 헬스장으로 향했다.


위층의 피티샵은 1층의 필라테스샵만큼이나 좋았다. 넓은 공간에 일반 헬스권 회원은 한 달에 다섯 명씩만 받는다고 했다. 남의 땀냄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쾌적한 환경. 트레이너 선생님이자 주인장은 바로 옆 집에 사사는 거 같다. PT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들어가신다. 하루는 귤을 한 박스 가져오셔서는 회원들에게 가져가라고 주신다. 제주에서 귤을 사 먹는 사람은 바보라는 제주의 맛을 비로소 느낀다. 제주인이 된 기분이랄까. 젖산과 감귤이 흐르는 제주도의 피티샵


러닝은 포기했지만 헬스장은 잃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거의) 매일 나가고 있다. 그래도 아침 운동은 여전히 너무 어렵다. 아침 러닝 대신 선택한 헬스장이지만 러닝을 지우면서 '아침'이라는 단어도 지워버린 듯하다. "내일은 엄청 빨리 일어나서 아침 운동을 하고야 말 거야!"라고 외쳐도 현실은 9시에 일어나기도 쉽지 않다. 몸무게가 처음보다 상승세를 그리고 있어도 느리게 흘러가는 제주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자위한다.


완벽한 것은 세상에 없다. 나는 내가 퇴사만 하면, 제주도에만 오면 모든 게 완벽해질 거라는 꿈을 꿨다. 하지만 내 몸 움직이는 거 하나조차도 완벽하기 이토록 어려운 걸 보면 그동안 내가 허상을 쫒고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제주의 삶은 괜찮다. 매일 내가 내 시간을 꾸려갈 수 있고, 아침에 못 했다고 해서 하루를 포기하지 않는다. 조금 흐트러진 모양새더라도 부쩍 행복감을 느낀다. 100의 속도로 있는 힘껏 달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80의 속도로 매일 하는 것이라는 걸 하루하루 알아가고 있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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