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달살이 - 11
"책 몇 권이나 가져가야 할까?"
잠깐 카페를 가도 가방에 책을 2개는 넣고 나가야 마음이 놓이는 욕심 많은 우리에겐 빠질 수 없는 질문이었다. 한달살이를 위한 준비물을 챙길 때 그 무엇보다도 책을 우선시했다.
"한 10권 정도 가져가고 교보나 알라딘 가서 사면 되지 않겠어?"
"제주도에 교보나 알라딘 없을걸? 한번 찾아봐."
정말이었다. 지도로 검색하니 제주도에는 서울에는 큰 동네라면 있는 대형서점들이 없었다. "도대체 제주 사람들은 어디에서 책 사고, 어디에서 책을 파는 거지?"
그런 의문을 품은 채 우리는 책을 바리바리 챙겼다. 주로 경제경영 서적이었다.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은 제주도 독립책방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겠지만, 경제경영이나 자기 개발서는 원하는 것을 찾기 쉽지 않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우리는 30권이 넘는 책을 끌어안고 제주도로 왔다. 보고 싶어서 사뒀던 책, 서로가 보고 추천한 책, 교보문고와 알라딘에 가서 새로 업어온 책들이었다. 이걸 다 보고 돌아갈 수 있을까란 고민은 하지 않았다. 책 2권을 가지고 나가도 막상 1페이지도 펴지 않고 그대로 돌아오는 날들도 있었던 우리에게 이건 고민거리도 아니었다. 책을 많이 가져가는 것은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며, 못 읽으면 다시 가져오면 그만이다.
실제로 제주에는 교보문고도, 영풍문고도, 알라딘도 없었다. 대신 제주도에는 아주 작은 독립서점들이 동네동네 있었다.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문을 여는 곳, 작은 집을 개조해서 만든 것 같은 곳들. 어떤 곳은 큰 테이블을 놓고 커피와 같이 판매하고 있었고, 건물 두 채를 독립적으로 두고 책을 채워둔 곳도 있었다. 전국에 있는 독립서점 주인 3명이 모여 팝업스토어처럼 운영하는 책방도 있었다.
바다 앞에 있는 곳, 동네 길목에 있는 곳, 시내에 있는 곳. 동네나 위치는 다 달랐지만 각자 동네서점들이 자신만의 색을 띠고 있었다. 책수저와 결혼하고 싶었던 나의 꿈이 '이런 곳에서 책방을 하면 어떨까' 하는 바람으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각기 다른 큐레이션에 눈이 갔다. 생전 처음 본 책들도 많았고, 그만큼 투박하지만 빛나는 책들도 있었다. 당장이라도 데려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집에는 30권의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남아 있었다. 그 아이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책방 구경만 하고 나오기도 며칠. 내 생일과 같은 작가의 책을 블라인드로 구매하는 생일책이 독특해서 남편과 하나씩 구매한 게 다였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렇게 경제경영서만 읽으면 내가 퇴사하기 전과 다를 게 뭘까. 문학작품을 읽을 때 무한한 기쁨을 느끼는 나를 지금의 여유로운 내가 봐주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생활이 나아진다고 해서 나를 챙길 수 있을까.
제주도까지 와서 하고 싶은 일을 뒤로하고 해야 하는 것들을 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씁쓸함을 느꼈다. 나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책들이 오히려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동안 눌러 왔던 문학적 갈등을 인정하기로 했다. 서점에서 소설책을 업어오는 일은 제주에서 나다운 삶을 찾는 여정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가자! 책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