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의 사랑과 하루키의 글쓰기

제주 한달살이 - 12

by 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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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글을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일명 하루키 글쓰기다. 그는 매일 엄격한 루틴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소설가라면 저녁 늦게까지 술을 퍼마실 것 같은 이미지라지만 그는 새벽 4시에 기상해 오전 시간에 글쓰기를 한다. 일일 목표량도 4000자 정도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오후에 그는 달리기를 한다. 매일 10킬로를 뛰며 매년 마라톤에 나간다. 그의 취침시간은 9시다.


4시에 기상하는 것도,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드는 것도 나와는 먼 일이다. 하지만 벌써 열흘 넘게 지키고 있는 것이 기상 후 글쓰기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흔히 말해 성공한 사람들이 왜 중요한 일은 오전시간에 해야 한다고 하는지 알 것만 같다. 확실히 집중이 잘 되기도 하고, 중요한 일을 하나 끝냈다는 생각이 오후 시간을 더 홀가분하고 더 효율적이게 만든다. 원래 부담감이 크면 손이 느려지는 법이다.


하지만 요 며칠간 글을 쓰면서 느꼈던 불편감이 있었다.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음, 너무 내 감정과 시선 위주이며 인사이트가 없음, 글에 결론이 없음. 처음에는 뭐가 이상한 지 몰랐는데 이상했고, 그 후엔 거스르미처럼 묘하게 거슬렸다. 그때부터 "내가 원래 이렇게 글을 못 썼나" 싶은 생각에 기분이 나빠지기도 했다. 결국 구조를 다시 짜고 많은 것들을 덜어내며 결말을 억지로 만들고 있다. 주로 ~해야지와 같은 다짐의 결말.


그러다가 오랜만에 책방에 갔다. "이제 문학책 읽고 말겠어"라며 간 곳은 애석하게도 그림책이 가득한 곳. 소설은 눈 씻고 찾을래도 찾을 수가 없었고, 그나마 나를 유혹하던 건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하루키의 에세이였다. 어쩌면 그나마라는 표현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예전부터 하루키의 글을 동경해 왔고, 한동안 소설과 멀어지면서 그와도 헤어지는 듯했으나 그는 여전히 나에게 우상의 우상 같은 존재였으며, 그 책은 내가 읽지 못한 책이었으니까.


책을 펴는 순간 역시 하루키다 싶었다. 그의 글은 엄청나게 화려하지 않지만 조화롭다. 그가 사는 동네, 그의 일상은 구구절절 말하지 않더라도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그가 마라톤을 할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 동네의 고양이들은 어떨지, 어떤 일상을 보낼지와 같은 것들이. 역시 대가는 대가다.


맨 처음 챕터의 마지막장을 폈다. 그곳에는 다람쥐가 사랑을 나누는 사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앞장까지만 해도 프리스턴의 검은 다람쥐와 그 동네의 묘한 속물적인 구석, 그리고 검은 다람쥐는 검은 다람쥐끼리만 사귄다는 그의 시선이 담겨 있었는데 말이다. 그는 말했다.


"검정과 갈색이 부부가 되는 예를 나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본 적이 없다.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가 보다-라고 해도 뭐가 어려운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래 사진은 보통 다람쥐끼리 우리 집 앞의 잔디밭 위에서 대낮에 당당하게 일을 벌이고 있는 사진이다. 눈초리가 자못 진지하고 귀엽다. 역시 이런 건 진지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하긴 좀 곤란하긴 하지."


어? 뭔가 허전한데? 대단한 철학이나 결말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야? 이래도 돼? 뒤에 내용이 더 있을 것만 같은 어색함에 한동안 멈춰 있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동안 너무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게 뭐야?" 같은 이야기만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명확하게 단정적으로 마무리하려는 습성이 생긴 것 같다.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와 남에게 보여지는 것 사이의 혼종스러움.


그래, 이게 인생이 아닌가. 사람이 뭐 맨날 깨우치고 다짐하는 게 말이 되나. 집마당으로 들어온 다람쥐가 이야깃거리가 된다면 고마운 거고, 그게 또 사는 동네의 문화적 특성을 교묘하게 드러낼 장치가 된다면 더 즐거운 거고. 아무것도 아니어도 그냥 누군가 읽고 넘어갈 일상의 한 페이지라면 그것도 쏘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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