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제주 와서는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이 치킨이라니

제주 한달살이 -13

by 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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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엔 맛있는 음식들이 많다. 제주도에서만 먹을 수 있진 않지만 특별히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음식들. 가장 먼저 꼽으라면 우선 감귤을 뽑겠다. 제주도 어디에나 길거리엔 감귤이 가득하고 어딜가도 감귤이 있다. 식당에 가도 한 봉지씩을 앞에 두고 팔고, 운동을 가도 감귤을 한 바켓 두고는 가져가라고 하신다. 감귤 나무 아래 타이벡이라는 천을 깔아서 키우는 타이벡 귤은 유독 더 달다. 무엇이든 싱싱할 때 먹는 게 맛있듯 제주의 귤도 더 달게 느껴진다.


또 다른 걸 꼽으라면 고등어회? 육지에서는 정말 싱싱한 걸 먹으려면 돈 십만 원이 우스운 고등어회는 제주도에 세고 셌다. 갈색빛이 흐르며 기름진 고등어회를 한 입 베어 물자면 연어, 방어 저리 가라다. 어딜 들어가도 비리지 않은 고등어회를 먹을 수 있다는 건 아주 큰 장점이다.


난 보말칼국수도 좋아한다. 보통 보말칼국수는 매생이랑 함께 들어가는데 국물이 아주 시원하다. 특히 제주의 칼바람과 사투를 벌이다가 한 입 떠먹는 맛은 말로 이룰 수가 없다. 시원하다와 뜨뜻하다는 말이 공존하는 맛. 잘게 쪼갠 보말이 "육지의 매생이칼국수와 난 달라요"라며 손을 들고일어난다. 특히 면을 초록색으로 뽑는 식당들을 나는 사랑하는 편이다.


제주도 하면 또 빠질 수 없는 게 흑돼지다. 흙에서 자라 흙돼지인지 알았는데 까매서 흑돼지란다. 찾아보니 거의 오겹살의 원조급이다. 어쨌든 제주 흑돼지는 삼겹살로 구워 먹어도 맛있지만, 고기국수나 돔베고기로도 많이 먹는다. 특히 제주도의 어느 기사식당이나 뷔페를 가도 돔베고기는 빠지지 않는다. 일반돼지보다 뭔가 쫀득하면서 육즙이 흐르는 맛이랄까.


하지만 내가 가장 맛있게 먹은 흑돼지는 의외로 마트에서 파는 2장에 3800원짜리 흑돼지 돈가스였다. 튀겼을 때도 고기가 퍼지지 않고 탱글탱글하면서 차원이 다른 부드러움... 제주도 함덕 근처에서 한달살이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황금식자재마트에서 돈가스를 사서 튀겨드시라고 말하고 싶다....


이외에도 제주는 맛있는 음식들이 많다. 그 비싸다는 우니를 숟가락으로 퍼먹는 음식점도 있고, 갈치조림, 해물뚝배기, 몸국, 고사리 육개장 등등....


하지만 재밌게도 내가 제주 생활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 먹은 것은 집 앞의 치킨집이었다. 사실 그 동네를 찾을 때 음식점이 하나도 없어 아쉽기는 했다. 차를 타고 5분은 나가야 음식점을 만날 수 있다니. 그런데 빛 같은 리뷰가 쌓인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치킨집이었다. 펜션 주인이 하는 그 치킨집에는 유독 '인생치킨집'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어 있었다.


드디어 처음 치킨을 시켜 먹으려던 날,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365일 한다던 그 업체에서 문자가 하나 딸랑 날아왔다. "오늘은 쉽니다." 그때 밀려오는 좌절감이란. 치킨을 위해 저녁도 안 먹고 운동을 했는데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그 옆 치킨집에서 치킨을 포장해서 먹었다. 맛은 쏘쏘. 흠 제주도까지 와서 치킨을 먹는 건 역시 오바스럽나.


그래도 이대로 맛보지도 못 하긴 아쉬웠다. 딱 일주일 후 원래 시키려던 치킨집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가장 잘 나간다는 간장치킨과 맥주 한 병을 품에 안고 집으로 달려왔다. 식탁에 앉아 봉 한입을 베어 물었더니, 어 다르다. 간장치킨을 잘하는 곳과 못하는 곳의 차이점은 명확하다. 바삭함과 튀김옷의 두께, 그리고 염도. 배달해서 먹으면 눅눅해지기 쉽고, 내가 사랑하던 교촌은 왜인지 요즘 너무 짜졌다.


그런데 여긴 얇은 튀김옷의 바삭함이 살아있었고, 심지어 짜지 않았다. 겉으로 봤을 때는 거의 후라이드와 다름이 없어 보이는 색깔. 거기에다가 갓 튀겨낸 얇은 감자튀김과 청양고추를 곁들인 간장 소스까지. 간장치킨을 간장소스에 찍어먹는다는 게 문득 생각하면 이상할 수 있는데 그만큼 또 레이어를 쌓는 맛이랄까.


결국 우리는 그다음 주에도 그 집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에 도전한 후라이드는 역시나 간장만은 못했다. 베스트는 베스트인 이유가 있는 법이지. 이제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사실 다른 것보다 아쉬운 건 간장치킨이다. 치킨이 뭐 그래봤자 치킨이지 별 거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만한 사람들을 위해 다른 주문자의 리뷰도 덧붙여 본다.


"제주 한달살이 기껏 와서는 제일 많이 먹은 음식이 치킨이라는 게 자존심 상하긴 하지만 3일 연속 먹는 중입니다..." 네 저두요...자존심이 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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