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니까 만난 친구의 친구

제주 한달살이 - 15

by 다온

매년 겨울이 되면 동네친구 5명이 모인 단톡방이 시끄럽다.

"00이네 귤 오픈! 주문받습니다. 5kg에 1만8000원, 10kg 3만원"

제주도에 사는 친구의 친구네 귤나무가 붉어지기 시작하면 귤파티가 시작된다.


"우리 집이랑 시댁도 하나, 난 두 박스 부탁해."

"우리는 내가 먹을 거 작은 거 하나만."

몇 년째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제주도에 있는데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친구 지금 제주에서 한달살이 한다니까 귤 가져다준다는데?"

처음에는 한 달 내 가게에 한번 들르면 되겠다 싶어 사양을 했다. 나중에는 헬스장에서 귤을 얻어다 먹어서 귤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한 달은 금세 가버렸고 이제 제주를 떠나야 할 시간이 임박해졌다. 어쩔 수 없이 지인들에게는 친구를 통해 귤을 보냈고 나중에 보자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자가 왔다.

"어디 계세요? 저 어차피 지나가는 길이니까 제발 좀 받아주세요"

그렇게 귤을 큰 봉지에 담아 가져 온 친구의 친구를 만났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느낌이랄까.


나는 그가 가족들이랑 같이 있다길래 고향이 제주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가 군대에 있을 때 부모님이 제주로 넘어오셨고, 그도 자연스럽게 제주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고 했다.


"여기 온 지는 그럼 얼마나 됐어요?"

"한 8~9년 됐나. 그 정도 된 거 같아요."

"근데 서울에 있을 수도 있는데 왜 따라왔어요?"

"어?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혼자는 외롭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어머님과 함께 청과를 운영하는 그는 스마트스토어로 귤을 파는 신세대 농부 스타일이랄까. 품에 안고 온 강아지는 너무나 편안해 보였고, 그가 건넨 귤은 껍질이 얇고 아주 달았다. 따뜻한 제주도처럼.


나는 MBTI로 치면 E 성향이다. 누가 봐도 외향형 같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내 에너지는 너무 소박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특히 기자일을 하면서는 이게 사람 만나는 일이라 친목의 바운더리를 넓히는 데 한계가 있었다. 친구의 친구를 만나는 자리? 절대 안 갔다.


하지만 제주에 와서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 만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 관대해진 걸까. 친구의 친구를 만나는 경험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게 이렇게 즐거운데 그동안 눈앞의 일들에만 급급해 왜 애써 관심을 끄고 살았나 싶다. 이젠 뭐 자유의 몸이니 조금 더 보폭을 넓혀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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