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람들

제주 한달살이 - 16

by 다온

"너네 서울 올라온 건 아니지?"


느지막하게 저녁을 먹고 쉬고 있을 때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당연히 제주지. 왜? 무슨 일 있어?"


알고 보니 우리를 목포에서 제주까지 실어다 줬던, 제주에서 목포까지 데려다줄 퀸제누비아호가 사고가 났다고 한다. 배가 좌초됐다나 뭐라나. 갑자기 세월호의 기억이 올라와 급하게 뉴스를 찾아봤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다.


세월호가 침몰했던 날이 기억난다. 대학생 때 학교를 가려고 집을 나서려다가 뉴스를 봤는데 배가 침몰됐다는 거다. 처음에는 전원 구조됐다고 소식에 안심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아직 선내에 많은 이들이 있다고 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팽목항에 모인 가족들은 부모, 자식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기도를 했고, 한쪽 어귀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상황이 중계되는 시간 동안 물속에서 떨고 있을 아스러져가는 생명들이 너무 안타까워 차마 발을 떼지 못했다.


세월호 사건은 온 국민을 큰 슬픔에 빠뜨렸다. 특히 수학여행이라고 설레며 집을 나갔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죽음과 그들의 유품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희생자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은 캠페인으로 확대됐다. 선원들의 무책임한 태도와 컨트롤 타워의 부재, 구조 과정에서의 미흡함 등은 결국 분노로 번져 촛불 집회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그 후로 수학여행 방식도 바뀌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이전에는 전체 학년이 같은 장소로 갔다면, 사고 이후에는 학급 단위로 나눠가는 방식이 권장됐다. 특히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지 않는 학교들이 많아졌다.


그 후 10년, 그런데 이번에도 배 사고란다. 심지어 섬에 배를 박았단다. 아니 왜? 아무리 목포에 섬이 많다고 해도 배가 섬을 올라탈 정도가 될 수 있나. 다행히 30여 명이 다치는 수준에서 끝났지만, 더 큰 사고로 번질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사고 후 수사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는 더 어처구니없었다. 선원법에 따르면 당시 해역은 선장이 직접 지휘해야 하지만 선장은 방에서 쉬고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해 2월 퀸제누비아 2호 취항 이후 여기를 지나면서 한 번도 조타실에 나온 적이 었었단다. 이런 무책임함에 치가 떨린다.


사고가 났던 그 배를 타고 목포로 넘어왔다. 갈 때와 다르게 절차가 복잡해졌다. 차 트렁크에 대한 검사도 꼼꼼하게 진행한다. 특히 이전에는 차를 배에 넣고 바로 여객실로 올라갔는데, 이제는 차를 옮긴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여객터미널로 가서 입항절차를 밟아야 한다. 배를 타기 전 항구로 들어갈 때 신분증 검사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두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셈이다.


물론 이게 정상일 것이다. 퀸제누비아 사고 이후 문제 발생 가능성을 깨닫고는 신분확인 절차가 강화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평소에 대충 하다가 문제가 일어나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치는, 게다가 더 나은 방법은 고민되지 않는 안이함이 너무 아쉽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다." 어린 시절부터 지겹도록 들은 속담, 나는 지금 그런 상황에 있지는 않을까. 소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줄 거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란 헛된 바람을 가지고... 나는 지금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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