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올드타운에서 5박 6일
프롤로그
2023년은 여러모로 할 일이 많은 해였다. 하던 일을 마무리해야 했고 그와 동시에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했다. 출발선에서 내딛는 첫 발만 큼이나 중요한 시기였는데 새 나라의 어린이로 살았던 내가 처음 맞이하는 통 큰 시간을 잘 관리할리도 만무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수입 없는 프리랜서의 삶이 익숙해졌을 때쯤, 떠나기로 했다.
신혼여행이라는 특수성을 제외하면 여행지를 고민하는 일은 꽤나 오랜만이다. 어딜 가야 잘 쉬고 왔다는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우리 잠시 쉬어가자는 말을 하기 위해 목적지를 찾고 있던 나에게 남편은 치앙마이를 제안한다. 연애시절 가보고 싶다고 했던 그곳이 오랜만의 여행에 설렌 그의 마음에 떠올랐던 것이다. 사실 그때는 잘 모르고 했던 말인데 보면 볼수록 지금의 나와 우리에게 딱 맞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파시가 정말 있는 걸까.
다녀온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굳이 기록으로 남기는 건, 마음을 채운 것들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함과 잊지 않기 위함. 두 가지 목적이다. 여행 정보는 이미 홍수처럼 차고 넘치니 그저 조금 다른 글을 써보고 싶었다.
숙소 고르기
치앙마이는 크게 7 지역으로 나뉜다. 보통 워케이션이나 한 달 살기로 많이 가는 곳인데, 동네마다 분위기가 다른 것도 한몫하는 듯하다. 지역 개성만큼이나 숙소 분위기도 다양해서 여러 개의 호텔에 머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올드타운 내에서도 예쁜 호텔들이 참 많다. 고민이 많고 신중한 나는 열심히 찾은 호텔들을 엮어 목록을 만들었고 남편과는 몇 마디의 짧은 대화 끝에 '더 차임스 호텔'을 선택했다. 서로 잘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답은 이미 정해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이 호텔은 다른 호텔에 비해 후기가 많이 없는 편이었지만 그래서 한국사람을 만날 일이 드물 것 같았고 조식이 없으니 여행지를 더 많이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막상 다녀와보니 생각했던 대로다. 올드타운 내 어디로든 이동하기 편리한 위치면서도 조용했다. 룸 컨디션도 물론 괜찮았고 수압도 좋았다. 다만 샤워 필터는 치앙마이 어디로 가든 챙겨가는 편이 좋겠다.
계획 세우기
여행이란 가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다녀와 그 짐을 모두 정리할 때까지라고 생각한다. 준비하는 과정과 머무르다 돌아오는 순간까지 버릴 것이 없는 경험이다. 그 경험이 너무 소중해서 한 때는 시간 단위로 엑셀 표를 만들었다. 계획한 일정을 모두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상황을 판단하려면 선행학습이 필요하고, 여행 계획표는 그 학습의 결과물이자 참고서가 되는 셈이다. 꽤 재밌는 작업이지만 이번에는 떠나기도 전에 염두할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 수고로움이 된다면 더 이상 여행이 아니지. 조절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전 계획의 적절함을 찾아야 했다.
사무실 책상에서나 보던 엑셀 대신 감성적인 노션 어플을 택하기로 한다. 날짜별로 칸을 나누어 출/도착과 점심, 저녁 같은 필수적인 시간 외에 나머지는 빈칸으로 두었다. 구글맵에는 식당/관광/쇼핑 별로 흥미로운 곳들을 저장해 두면 위치가 알아서 리스트업이 되니 간편하다. 역시 우리는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미리 예약을 해야 하거나 꼭 가보고 싶은 곳들만 지도에 따로 표시한 채 드디어 떠날 시간이 되었다.
여행의 시작
뭐 할까? 뭐가 있었더라? 밥은 어디 가서 먹지? 지도를 보며 그때그때 정한 것이라 계획이라기보다 '다녀온 곳'에 가깝다. 길 찾기에 젬병인 나는 구글맵 사용법을 남편에게 미리 일러두었다. 찾는 건 그의 몫. 혼자라면 어떻게든 찾았겠지만 남편이 같이 있으니 그에게 의지해보기로 한다. 그가 길을 찾아주면 옆에 붙은 나는 하늘과 구름, 땅과 풀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태국은 출발 비행기가 주로 밤~새벽 시간이라 여행의 설렘이 더해지는 기분이다. 공항 밖을 나와 우버를 부르는 것으로 여행의 시간이 시작된다. 공항에서 시내, 올드타운까지는 우버로 10분~15분 남짓. 호텔에 짐을 대충 내려놓자 자정이 넘어간다. 그래도 첫날인데 바로 잠들려니 아쉬운 마음에 희미한 불빛들을 쫓아나가 본다.
마침 호텔 근처에 분위기 좋은 음악이 흐르는 펍을 발견했다. 사람들도 꽤 있는 걸로 봐서는 아직 한창인가 보다. 맥주 1병씩은 우선 주문했는데 어디를 봐도 푸드 메뉴가 없다. 물어보니 길 건너 편의점에서 맘껏 사 와서 먹으라고 한다. 그 뒤로도 다른 식당에서 술과 안주를 같이 파는 건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옆 테이블에서 들리는 낯익은 말소리에 우리가 타국의 땅을 밟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시간이 걸렸고 적극적인 사장님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나가는 손님들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고는 남은 시간 동안 그 골목에 다시는 가지 않기로 한 우리는 내향인 부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