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무서워 하지만 그 앞에 서 있기는 한이 없다. 그래서 바다로 향한다.
추위를 많이 타면서도 코끝이 시려지는 계절이 오면 기분 좋은 느낌이 간질거린다. 겨울에 태어난 아이의 본능 같은 걸까 아니면 지난해의 겨울이 행복했기 때문일까. 바람에 실리는 쿰쿰하고 비릿한 냄새는 육지에 사는 이가 기어코 떠나왔음을 실감 나게 한다.
들뜬 기분에 맞춰 영금정 암초 위를 폴짝거리며 긴장을 푼다. 바위 한가운데 웅크리고 앉아 웅덩이 속 나풀거리는 해초들을 보며 까르르. 이윽고 갈매기의 날갯짓을 따라 눈에 가득 수평선을 담다가 아무래도 이 풍경에 내가 있어야겠다, 결심이 서면 용기 내 사진도 남겨본다. 반짝이는 예쁜 것들을 모두 가지고 올 수가 없으니 카메라는 필수. 결과물은 장담할 수 없지만 찰나를 두고두고 추억하려는 마음을 모르는 체할 수가 없다.
마음먹기 오래 걸리는 내가 하루 만에 여행지를 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해안선과 가까운 항구의 둘레길 때문이었다. 비록 나를 따라잡은 비구름 탓에 바다는 흐리고 거칠었지만, 여행의 우연이 아니면 이 조차 경험하기 힘든 일. 어쩌면 바다도 나를 반겨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뿌듯해진다. 눈이 부신 바람에 끓어오르는 파도 곁을 걷다 보면 떠나온 이유가 되새겨진다.
이래서 사람들이 자연을 찾는구나, 나도 그래서 왔구나
자연 앞에서는 견주고 내세울 삶이 없다는 것.
그래서 모두가 같은 삶이라는 심심한 위로가 진하게 전해지는 순간.
바닷가 마을의 해는 금세 저물고 어둑해진 호수에는 가로등 불빛이 일렁인다. 이곳에 던져진 많은 고민 중 나는 무엇을 내려놓으려고 왔을까. 애꿎은 질문들만 쌓이는 밤.
밤새 쌓인 질문을 못 본 척, 아침 시장으로 향해 손과 배를 두둑이 채우다 보면 그까짓 게 싶다. 그저 낯선 이 곳에서의 신선함과 즐거움에 풍덩 헤엄치고 있다보면 간 밤의 질문들은 어쩌나. 걱정 거품들이 보글보글 올라온다. 거품이 나를 삼키려고 할 때마다 마음을 채운 순간들에 기대어 소망한다. 삶의 한 계절마다 바다가 배였으니 한 해를 잘 살아냈구나 마음껏 안도하기를. 도망친 것이 아니라 떠나야할 때 떠나왔음을 알아주기를. 그렇게 다시 코 끝이 시려지는 날을 기대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