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편집
주간 편집회의
(죽 둘러앉아 있음. 홍 편집, 장 디잔, 이 팀장 등)
[김 대표] “매출 떨어지고 다들 심란한 거 알아.”
[일동] “...”
[대표]
“출판계가 단군 이래 최대 위기라지만
출판계가 언제는 호황이었나 뭐?
그리고 이럴 때가 오히려 기회 아니겠어?
살아남을 놈들만 살아남는 거야.
오히려 시장이 정리되는 효과가 있어.”
[일동, 같은 생각]
‘우리도 정리될 수 있다는 말?’
[대표]
“문턱이 어느 정도 돼야 어중이떠중이 못 덤비지, 안 그래?”
[일동, 같은 생각]
‘우리가 어중이떠중이라는 말?’
[대표]
“기획과 제작은 현실이야.
실험적인 책은 안 돼. 하려면 실험비 내고 해.
시장을 읽어. 자기 혼자 땡기는 책은 자비 출판 해.”
[일동, 같은 생각]
‘연봉 인상은 꿈도 꾸지 말라는 얘기.’
[대표]
“이럴 때일수록 회사 분위기도 중요해.
근태 신경 쓰고 자중자애 해.
충성심까진 안 바래. 최소한의 애사심은 보여줘.”
[일동, 같은 생각]
‘말이라고 다 하는구나.’
[홍 편집, 생각]
‘자중자애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슬슬 멍 때리기에 진입.
[장디잔, 생각]
‘자중자애 했으면 내가 여기에 있지 않다.’
지루한 표정으로 귀를 후빈다.
[대표]
“그리고 팀들은 협력관계가 아니야. 경쟁관계지.
팀끼리 사이좋으면 밥이 나와, 떡이 나와.
회사에 친목 하러 나와? 치열하게 경쟁해도 모자랄 판에.”
[일동, 같은 생각]
‘우리가 행복한 게 싫으면 싫다고 하세요.’
[대표]
“패션에만 TPO가 있는 게 아냐.
조직생활에도 때와 장소와 상황이 있는 거야.
그런 팀 있더라?
다른 팀 야근할 때 칼퇴하고
야근할 거 몰아서 특근하고 수당 챙기고
쉬는 날 다 쉬고
눈치 없이 연차 쓰고
네 일 내 일 가리고
자기 분야만 챙기고...”
[관자놀이가 묘하게 땅기는 느낌.]
[홍 생각] ‘뭐지, 이건?’
[대표]
“하지만 분야가 어딨어?
세상은 무한 경쟁이야.”
[대표]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뭘 알아? 대표실에 갇혀 있는 내가?
그런 투서가 날아들었다는 얘기야. 내 이메일로.
여기서 읽을 수도 있지만 차마 그건 경우가 아니잖아?
대충만 말할게. 어느 한 팀이 전체 분위기 흐리고 있다고...
보고 있자니 속상하다고...
나도 정말 깜짝 놀랐어.
이런 말을 해야 하나 정말 망설였어.
그동안 내가 모두를 믿고 너무 갇혀 지냈나...”
[장 디잔 생각]
‘누가 믿을까 겁나는 얘기.’
[홍, 생각, 떨리는 눈꺼풀. 뻣뻣해지는 정수리]
누가 들어도 우리 팀 얘기.
(홍에게 쏠린 눈들)
[입을 악물고 사람들을 차례로 노려보는 홍]
누구야.
눈 희번덕.
날 도발해? 반드시 색출할 거야.
(멀뚱히 앉아 있는 장 디잔)
[홍 생각] ‘아니야. 저 인간이 성질은 더러워도 이런 식으로 똥물 튀길 인간은 아니야.’
(눈을 내리깔고 있는 이 팀장. 어딘지 찔리는 데가 있어 보이는 이 팀장. 유죄 인간.)
[홍 생각] ‘그래, 저 인간이야. 그런 말종 짓을 할 인간은 저 인간밖에 없지.’
사건 일주일 전.
[이 팀장, 자리에 앉은 채로 기웃대며] “어머~ 그 팀은 어쩜 그래? 다들 얼마나 유능하면 항상 칼퇴야~~?”
[홍, 똥 씹은 표정] "오늘 할 일 다 했으면 가는 거지, 그럼 여기 살아요?"
사건 이틀 전.
[이 팀장, 홍 뒤로 지나가다가 어깨너머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어머~ 또 특근수당 올려? 이 팀은 야근은 안 하면서 특근은 하더라~?”
[홍, 똥 씹은 표정] “마감하느라 인쇄소에서 주말 다 보냈어요.”
[이 팀장] “어머~ 마감은 왜 꼭 주말에 한대?”
[홍, 가방 챙기며 생각]
‘이런 시벨리우스.
니네는 지켜는 봤냐, 마감?
날마다 야근한답시고 전기 축내지나 마.’
사건 하루 전.
(정수기에서)
[이 팀장] “대표가 우리 팀에만 이 일 저 일 던지는데 미치겠어.”
[홍, 정수기 물 받으며 생각] ‘니네 팀에만?’
[이 팀장] “그 팀은 좋겠어~ 대표가 안 건드리잖아.”
[홍, 물마시며 생각] ‘남의 기획 채가지나 마.’
다시 현재.
[자리로 돌아와 앉는 홍.]
어제의 일도, 그제의 일도, 지난주 일도 다 생각난다.
들고 있던 다이어리를 팽개친다.
(끓어오르는 분노)
[장미] “팀장님, 또 얼굴 터질 것 같아요.”
[머리를 움켜잡는 홍. 뚜껑 열리는 홍]
우아아아! 부셔버릴 거야! 갈아 마실 거야!
평화는 끝이야.
홍은
그렇게
대표의
미끼를
물어버렸다.
근거 없는 미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