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손잡이 달기

위정22, 학이5

by whilelife



1. 손잡이의 고마움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이 절실한 계절, 겨울입니다. 한파가 찾아온다는 소식에 그동안 사본 적 없던 롱패딩을 장만하고 돌아오는 길, 따뜻한 음료가 마시고 싶어 유명한 커피 프랜차이즈에 들렀습니다. 좋은 옷을 싼 가격에 구매하여 기분도 좋고, 곧 눈 내릴 듯한 우중충한 날씨도 어쩐지 아늑하게 느껴지던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아 기분 좋게 머그컵을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뿔싸! 겨울이라 건조해진 내 손가락이 미끌! 하며 머그컵이 아래로 훅 처집니다. 그런데 다행히 머그컵 손잡이를 감고 있는 손가락이 머그컵 본체를 지지해 주어서 새로 받은 커피를 그대로 쏟아버리는 대참사는 막아주었습니다. 커피 몇 방울이 옷에 좀 튀긴 했지만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만약 손잡이가 없었더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겨울에는 이렇게 건조해진 손 때문에 컵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겨울에는 특히 손잡이가 달린 머그컵을 선호합니다. 손잡이에 손가락을 걸면 안전하게 컵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뜨거운 음료를 담은 컵은 특히나 손잡이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손가락에 화상을 입지 않으니까요.


손잡이의 고마움에 홀로 미소 짓다 보니, 문득 머리를 스치는 문장이 있습니다. 논어에서도 공자가 '손잡이'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컵에 달린 손잡이가 아니라, 마차의 손잡이, 즉 마차 구조물 중 하나인 가로대를 말씀하신 것이지만요. 커피를 마시며 무릎을 쳤습니다. 그렇구나. 컵, 마차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손잡이가 필요하구나. 공자의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2. 사람에게도 손잡이가 필요하다.





신뢰 없는 사람이 괜찮은지 모르겠구나.

큰 수레나 작은 수레 모두 멍에를 메는 곳이 없으면

어떻게 운행할 수 있겠느냐.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인이무신, 부지기가야.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

대거무예, 소거무월, 기하이행지재.


<위정 22>



위 문장을 처음 만났을 때 '예(輗)'와 '월(軏)'이라는 어려운 한자를 만나 끙끙거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 두 개의 한자가 마차의 구조물을 가리키는 명칭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아무리 읽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번 반복해 읽고 머릿속으로 정리한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지요.


위의 문장에서 나오는 큰 수레란 소가 끄는 수레, 작은 수레란 말이 끄는 수레라고 합니다. 수레에는 멍에를 메기 위한 가로대가 설치되는데,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 큰 수레에 달린 가로대는 예(輗), 작은 수레에 달린 가로대는 월(軏)이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한자에 그 의미도 생소하니, 자칫 문장의 이해도를 떨어뜨릴 것 같아서 위의 해석에서는 '가로대'라는 뜻이 아닌 '곳'이라는 뜻으로 쉽게 풀이했습니다.


머그컵의 손잡이는 사람과 컵을 한 몸으로 연결해 줍니다. 수레에 달린 가로대도 수레와 소, 말을 한 몸으로 연결해줍니다. 이렇게 가로대에 소와 말의 멍에를 연결해야 마차를 운행할 수 있습니다. 너무 뜨거워 들어올릴 수 없는 컵, 운행하지 못하는 수레는 상상할 수 없지요. 이렇듯, 손잡이는 서로 다른 존재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매개가 되며, 존재가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필수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도 또한 이러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공자의 입장입니다. 인간이 공동체와 연결될 수 있게 해주며, 공동체 안에서 자기의 뜻을 펼치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 안전지대가 되어줄 수 있는 필수 덕목. 그것이 바로 공자가 강조하고 있는 그것, 위의 문장에서 보다시피, 그것은 바로 '신뢰', 혹은 '미더움'입니다.


공자가 수레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신뢰(믿을 신 信)'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은유입니다. 마차가 운행되려면 말과 연결할 수 있는 '가로대'가 꼭 필요한 것처럼, 사람이 사회 속에서 움직이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신뢰가 없는 사람은 괜찮은지 모르겠다'는 공자의 표현은 눈여겨볼만합니다. 논어를 읽다 보면 공자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표현할 때도 완곡하게 돌려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괜찮은지 모르겠다'라는 표현은, 공자의 화법을 고려하면 매우 괜찮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사람이라면, '신뢰'를 반드시 장착해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습니다.




3. 마음에 손잡이를 달아야 하는 이유




어릴 때부터 존경하고 좋아하는 영화배우 '로빈 윌리암스'가 주연한 영화 중에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있습니다. 중학생 때 처음 그 영화를 보게되었을 때에는 분장한 '로빈 윌리암스'의 변신 모습과 한 사람이 아빠와 보모의 역할을 오가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즐겁게 웃기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영화를 다시 보니, 어릴 때는 보이지 않았던 부부 사이의 갈등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항상 잘한다고 말만 하고 현실을 외면했던 남편, 그런 남편에게 여러 번 실망하며 남편에 대한 신뢰를 잃은 아내는 결국 이혼을 선언하지요. 이 나이가 되어서야 영화 속 아내의 입장이 이해가 갔습니다. 중학생이었던 그 당시에는 아빠와 아이들을 갈라놓은 엄마 역할의 배우를 밉상으로 보기까지 했는데 말입니다.


내 말과 행동이 타인과 사회에서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타인이 내 말에 따라 행동해 줄 수 있는 근거, 사회가 나라는 존재를 믿어줄 수 있는 근거, 그것의 가장 밑바탕이 바로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미덥지 않으면 단 한 가지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도 내 말과 행동을 믿어주지 않는다면 나는 사회 밖으로 튕겨져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불신 위에서는 의심과 다툼만 있을 뿐입니다. 의심과 다툼으로 유지될 수 있는 공동체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건조해진 내 손끝에 미끄러진 유리잔처럼 깨져버리고 말 뿐입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와 같은 코미디 영화에서조차, 신뢰를 잃은 가족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매우 작고 사소한 단위의 인간관계에서조차 신뢰는 서로를 이어주는 강력한 손잡이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나에게 '미더움'이라는 손잡이를 장착하는 일은 이렇듯 중요합니다. '미더움'은 수레의 가로대처럼, 머그컵의 손잡이처럼 인간과 인간을, 인간과 사회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어줄 것이며 나라는 존재를 공동체 위에서 안전하게 받쳐주는 지지대가 될 수 있습니다.




4. 마음의 손잡이는 무엇으로 달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손잡이는 어떻게 달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미더워보이는 내가 될 수 있을까요? 손잡이 없는 컵에 손잡이를 붙일 때는 컵과 손잡이를 이어 줄 수 있는 접착액이 필요합니다. 수레에 가로대를 달기 위해서는 가로대를 양쪽에서 지지해 주는 '끌채'라는 구조물이 필요합니다. 사람에게 '신뢰', '미더움'을 장착할 수 있도록 돕는 그 무엇은 도대체 뭘까요?






"제후국을 다스릴 때에는

일을 공경히 하여 신뢰 있게 하며

소비를 절제하고 사람을 아끼며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에는 농한기에 해야 한다."


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

자왈 도천승지국, 경사이신, 절용이 애인, 사민이 시.


<학이 5>



위의 문장은 공자가 위정자의 입장에서 제시한 경영법입니다. 그러나 '경사이신(敬事而信)'만큼은 우리 모두가 각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말입니다. 모든 일에 대해 마음가짐과 행동을 '공경'하게 한다면, 백성을 신뢰 있게 대하는 것이며 또한 백성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자의 말씀을 통해 미루어보면 사람에게 믿음을 장착할 수 있는 접착제는 곧 ' '공경(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일이든 공경의 마음으로 해낸다면, 나에게 '신뢰'라는 손잡이를 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주인공을 다시 한번 떠올려 봅니다. 이혼 후 자신의 아이들을 매일 보고 싶었던 남자 주인공 '다니엘'은 아내가 아이를 돌보아 줄 아주머니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에게 아이들의 보모로 일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지만 거절당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믿을 수 없다며 단칼에 잘라내지요. 보나 마나 아이들 숙제도 봐주지 않고 하루종일 놀게 하다가 집안을 어지럽히고 저녁은 배달음식으로 때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지요.


결국 다니엘은 동생의 도움을 받아 할머니로 완벽하게 분장하여 찾아갑니다. 아내에게 고용되기 위해, '다니엘'은 유능한 보모이자 가정주부로서 인정받아야 했습니다. 완벽한 보모가 되기 위하여 철저하고도 눈물겹게 노력합니다.


아빠 '다니엘'이 정신없이 아이들과 놀아주기만 했다면,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아이들에게 숙제를 시키고 검사까지 꼼꼼하게 합니다. 아빠 '다니엘'이 대충 배달 음식을 시켜 아이들에게 주었다면,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훌륭한 가정식을 요리해서 식탁 테이블 웨어까지 완벽하게 세팅하여 아름다운 저녁상을 차려줍니다. 아빠 '다니엘'이 아이들과 아내의 말을 대충 흘려들었다면,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아이들과 아내의 말을 신중하게 들어주고 진심을 다해 조언을 해줍니다. 이렇게 하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이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이 되어 결국 아내의 신뢰를 얻게 되지요.


'다니엘'이 부인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 이유,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부인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얻었던 이유는 바로 공자가 제시한 한 글자의 한자 안에 들어있습니다. 다니엘과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가장 큰 차이, 이것이 바로 공자가 말한 '공경(敬)'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하여 꼭 필요한 일도, '다니엘'은 자기 편한 대로 행동하느라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부인의 호소도 잔소리라 여기며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공경이 없는 공동체 생활은 불신만 낳았습니다. 불신이 깊어진 뒤에는 공동체가 깨어지고. 다니엘이라는 인물은 아무것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깊은 '사랑'을 마음에 품고 있더라도 반드시 상대를 향한 '존중'과 '공경'의 행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5. 다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가끔, 손잡이 없는 유리잔에 찬물을 따라 벌컥벌컥 마시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날이 너무 더운 여름날, 혹은 오늘 하루의 업무가 너무 과다해서 머리가 폭발하기 직전일 때, 혹은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에서 낯 모르는 사람에게 까닭 없는 분노의 대상이 되고 말았을 때, 그럴 때는 급하게 들이키는 냉수가 나를 차분히 가라앉혀주며 위안이 될 때가 있지요.


그러나 평소의 나는 따뜻한 음료를 좋아합니다. 두툼한 머그컵에 찰랑이듯 담겨있는 뜨끈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찬 음료보다 따뜻한 음료가 좋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남을 해치는 이야기, 공포이야기보다는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훈훈한 이야기가 더 좋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따뜻한 음료를 먹기 위해서는 손잡이가 달린 머그컵이 필요합니다. 내 사랑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더욱더 손잡이를 장착해야 합니다. 내 사랑이 가득 들어있는 머그컵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손에 화상을 입지 않고도 쉽게 당겨 마실 수 있어야 합니다.


나 또한 나에게 손잡이가 튼실하게 잘 달렸는지 돌아봅니다. 한 때, 저 또한 독선적이며 차가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꾸만 내게 달린 손잡이를 떼어버리려고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싶어 방안에만 칩거해 하루를 보내고 밤에 몰래 나와 냉장고를 뒤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오히려 그때의 나는 나에게 손잡이를 달아줄 그 무엇이 간절하여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나의 진심을 내가 외면한 채, 오히려 손잡이 없는 지금의 생활이 좋은 척, 편안한 척 사느라 무척 고되고 불행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구속된 삶, 나답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의 진심을 인정할 용기가 없었던 비겁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더더욱 내 주변의 소중한 이들을 공경하여 신뢰라는 손잡이를 달아 따스함을 나누고 싶습니다. 떡볶이 한 접시를 앞에 두고 너 한 입, 나 한 입 나누어 먹으며 뜨끈한 아메리카노를 할짝이며 먹는 시간이 참으로 소중한 겨울, 이 계절의 한 때를 누리고 싶습니다.


손잡이를 달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나와 더욱 결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은 내가 길을 잃을 때, 내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쉽게 당겨 붙잡을 수 있도록, 내게 손잡이를 달고 싶습니다. 공경과 신뢰는 그렇게 우리의 겨울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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